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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체 60건) 제목보기제목+내용
[이달의독립운동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살림꾼
윤현진 선생은 1892년 경남 양산 출신으로 어린 시절 만성재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5세가 되던 1907년 구포의 구명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다.1909년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탐방한 뒤 깊이 있는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본 유학을 떠난 선생은
나라사랑신문   2018-04-02
[이달의독립운동가] 행동하는 지식인, 3·1만세운동을 성공으로
선생은 황해도 은율군 출신으로 1919년 1월 경성 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 회동에 참석하면서 국제정세와 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으며, 2월 초 독립운동에 참가할 것을 결심했다.당시 미국대통령이 제안한 민족자결주의와 고종이 독살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라사랑신문   2018-03-06
[이달의독립운동가] 독립운동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나선다
김규면 선생은 1880년 함북 경흥의 빈농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선생은 생업을 잇기 위해 원산으로 이주했으며 당시 독립교회 선교사인 펜윅을 만나 기독교에 입문하고 선교사로 활동했다. 1907년 선생은 가족과 함께 훈춘으로 망명해 대한기독교회 소속의
나라사랑신문   2018-02-01
[이달의독립운동가] 한국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은 1883년 1월 중국 쑤저우에서 장로교회 목사로 활동하던 조지필드 피치의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선생은 1909년부터 중국 상하이 YMCA에서 활동하며 여운형 선생을 주중 미국 대사 크레인에게 소개시켜주는 등 한국 독
나라사랑신문   2018-01-02
[이달의독립운동가] 늦은 나이에 뛰어든 독립운동, 애국지사의 전형
김치보 선생은 1859년(철종 10년) 9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08년 경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후 덕창국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선생의 한약방은 한인독립운동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선생은 1
나라사랑신문   2017-12-01
[이달의독립운동가] 순절로써 절조를 지켜낸 선비
선생은 1860년 홍성의 사족집안에서 태어나 부친에게서 한학을 수학했고 이후 독학으로 학문을 이뤘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해 일어난 홍주의병에 참여했으며, 김복한 등 주도자가 체포된 뒤에는 조의현 등과 재기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
나라사랑신문   2017-11-02
[이달의독립운동가] 압록강을 넘어 조국 독립의 푯대를 세운 의병
채상덕 선생은 황해도 출생으로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해 대한통군부 총장, 대한통의부 부총장, 의군부 총장을 역임하며 만주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1910년대에 독립의군부가 와해되자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해 압록강을 넘어 남만주로
나라사랑신문   2017-09-27
[이달의독립운동가] 아버지 유지 따라 독립운동에 바친 ‘충심’
고운기(본명 공진원) 선생은 함경남도 문천 출생으로 아버지인 공창준 선생은 을사늑약 직후 홍범도 장군과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선생은 1908년 홍범도 의병부대가 만주지역으로 이동할 때 아버지를 따라
나라사랑신문   2017-09-04
[이달의독립운동가] 모진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의병 동료 지켜
김수민 선생은 경기도 장단 북면 솔랑리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이었다.선생은 어려서 무예에 능하고 용력이 뛰어났으며 사격술과 전술에 능했다. 의병으로 활동하기 전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해 일본을 상대로 싸웠고,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
나라사랑신문   2017-07-31
[이달의독립운동가] “아들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으라”
조마리아 여사는 1862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조 여사는 황해도 해주군 광석동에 사는 동갑내기 안태훈과 혼인해 안중근(1879~1910), 안성녀(1881~ 1954), 안정근(1884~1949), 안공근(1889~193
나라사랑신문   2017-06-30
[이달의독립운동가] 일본군 만행 널리 알린 신문 기자
장덕준 선생은 1892년 황해도 재령의 빈농 집안 출신으로 1914년 평양일일신문사에 입사해 조선문 신문부 주간으로 근무하면서 조만식, 김동완, 이덕환 등 평양 주요 지식인들과 교류했다.1919년 김성수 선생과 함께 조선의 인재양성을 위해 우수한 학생
나라사랑신문   2017-06-01
[이달의독립운동가] ‘개벽’ ‘독립신문’ 배포…어린이의 영원한 벗
방정환 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1913년 선린상업학교 재학 중 천도교에 입교했으며 1917년 권병덕 선생의 소개로 천도교주인 손병희 선생의 딸 손용화와 결혼했다.선생은 1908년 소년 입지회를 통해 최초로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1918년 경성청년구락부를
나라사랑신문   2017-04-28
[이달의독립운동가] 민생 챙기는 것이 독립운동의 연장선
이상정 선생은 대구에서 재력을 갖춘 경주 이씨 가문에서 출생해 일찍 부친을 여의고 조부 슬하에서 성장했다.선생은 1909년 초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죠 중학교에서 수학하고 1917년 이후 대구 계성학교와 정주 오산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20년대
나라사랑신문   2017-04-03
[이달의독립운동가]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동참
충북 청주 출신인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했다.선생은 18세 쯤 동학에 입도한 후 1894년 손병희와 함께 6만 명의 교도를 이끌고 동학혁명에 참여했다. 1908년 손병희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해 천
나라사랑신문   2017-03-02
[이달의독립운동가] 의술로 독립운동 지원한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에서 2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세브란스의학교 재학시절 안창호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자매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했다. 그러나 105인 사건으로 체포위기에 처하자 김필순과 함께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나라사랑신문   2017-02-02
[이달의독립운동가]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일제에 투쟁하며 살겠다
이소응 선생은 1872년 22세 때 화서 이항로의 제자인 성재 유중교의 문하에 들어가 화서학파의 일원이 됐다. 특히 제천의병장 의암 유인석 선생과는 동문 선배이자 동지인 동시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기대며 일생동안 항일투쟁 등 활동의 궤적을 함께 했다.
나라사랑신문   2017-01-06
[이달의독립운동가] 독립 위해 던진 폭탄, 후세에 이어진 정신
최수봉 선생은 1894년 경남 밀양 출신으로 향리의 개량서당을 다니며 한문과 유교적 가르침을 익히고 신지식도 섭렵했다. 그 후 김원봉 선생과 함께 밀양공보를 다니던 중 단군이 일본 대화족 시조의 아우라고 주장한 일본인 교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퇴학당
나라사랑신문   2016-12-01
[이달의독립운동가] 조국을 구하기 위해 구국외교 펼치다
선생은 1874년 경기도 용인에서 군수인 이경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헐버트가 세운 육영공원에서 근대학문을 익혔다. 1894년 과거시험에 응시해 성균관 진사에 합격한 후 한성부 주사에 임명됐으며 1899년 관립 영어학교 교관으로 후학을 지도했다.
나라사랑신문   2016-11-01
[이달의독립운동가] 검열로도 막을 수 없는 애국정신, 민족의 ‘아리랑’
나운규 선생은 함북 회령 출신으로 1919년 3월 함북 회령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일경의 수배를 받게 되자 북간도로 이동했다.1920년 선생은 훈춘에서 대한국민회 한순범 등과 함께 일제 나남 사단본부와 회령 수비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인 청회선 철
나라사랑신문   2016-09-30
[이달의독립운동가] 일평생 독립군 양성하고 항일무장투쟁
나중소 선생은 16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했다. 1907년 대한제국 진위대 부위로 재직 중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만주로 망명해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등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19년 3월 선생은 북간도 왕
나라사랑신문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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