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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체 82건) 제목보기제목+내용
[이달의독립운동가] 민족대표 48인으로 수원지역의 3·1운동을 이끌다
1889년 11월 18일 경기도 수원군 남수리에서 태어난 김세환 선생은 청소년 시기에 교회를 통해 선교활동과 함께 교육과 구국활동을 펼치는 인물들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영향을 받아 교육가와 독립운동가로서 꿈을 키워나갔다.이어 선생은
나라사랑신문   2020-03-05
[이달의독립운동가] “내가 할 수 없는 일, 학생에게 시킬 수 없다”
조지 새넌 맥큔 선생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1873년 태어나 1905년 부인과 함께 내한했고, 1909년 평안북도 신성학교 교장으로 본격적으로 교육에 힘썼다.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신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구속되자 선생은 이들
나라사랑신문   2020-02-03
[이달의독립운동가] 의진을 일으켜 충효를 실천한 산남의병장
정용기 선생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부친인 정환직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1906년 영천창의소를 설치하고 권세가를 지어 백성들 모두 함께 의병으로 나설 것을 호소했다.정용기 선생을 대장으로 1,000여 명의 의병이 모여 ‘산남의진’이 결성됐
나라사랑신문   2020-01-02
[이달의독립운동가] “뜻을 이루기 전에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11세에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일본의 종살이 되라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자퇴하고, 매곡 성주록이 개설한 서당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배웠다. 이후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두
나라사랑신문   2019-12-03
[이달의독립운동가] “국어와 국사가 살아있으면 망하지 않는다”
박은식 선생은 서북협성학교와 오성학교 교장을 맡아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민중계몽운동을 벌였다.선생은 1912년에는 상해에서 동제사를 결성해 한국 독립운동의 기반 조성에 주력했으며 1915년 ‘한국
나라사랑신문   2019-11-05
[이달의독립운동가] “자주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노라”
안중근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그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했고, 평양에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그는 1907년 의병부대를 조직해 독립전쟁 전략을 구사하기
나라사랑신문   2019-10-01
[이달의독립운동가]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죽을 것을 맹세합시다”
지청천 장군은 1888년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으나 학교가 폐교되면서 일본사관학교에 유학해 군사학 등을 공부했다.이후 장군은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으로 취임해 독립군 간부와 병사를 양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그는 1921년
나라사랑신문   2019-08-21
[이달의독립운동가] “내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
김구 선생은 1904년 신지식인을 길러내는 애국계몽운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황해도에서 교육 구국운동에 힘을 쏟았다.또한 최광옥과 함께 해서교육총회를 조직해 학무총감에 추대돼 각 군을 돌며 계몽운동을 펼쳤다. 1910년 선생은 신민회에 가입해 구국운동을
나라사랑신문   2019-07-31
[이달의독립운동가] “2,000만 동포는 최후의 1인이 죽을 때까지 독립을 돕자”
이동휘 선생은 1873년 한남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선생은 보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이후 선생은 대중을 자각시켜 구국운동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 교육문화활동을 전개했다.선생은 서북
나라사랑신문   2019-07-01
[이달의독립운동가] 저항적 민족시인이자 위대한 독립투사
한용운 선생은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났다.선생은 1913년 한국불교가 새로운 문명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개혁방안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책으로 평가받는 ‘조선불교유신론’을 발간했고, 불교 혁신운동의 주역이 됐다.1919년 종교계를 중심으로
나라사랑신문   2019-06-03
[이달의독립운동가] 평생을 민족 해방에 투신한 독립운동가 부부
김규식 선생(1881.1.29~1950.12. 10)과 김순애 선생(1889.5.12~19 76.5.17) 부부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김규식 선생은 1906년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여러 강연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나라사랑신문   2019-04-30
[이달의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이자 민족계몽 운동가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에서 태어났다. 1902년 결혼 직후 미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언론활동과 교육진흥, 실업진흥 등 여러 가지 구국사업을 전개했고, 조국 독립을 추구한 국내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에도 참여했다.19
나라사랑신문   2019-04-02
[이달의독립운동가] 독립선언 방식의 운동 결정…3·1운동의 주역
손병희 선생은 1861년 충북 청원(청주)에서 출생해 1882년 동학에 입문해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기수로 활약했다.선생은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국권을 수호하고, 또 회복하기 위해 민족을 계몽하는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선생은
나라사랑신문   2019-03-06
[이달의독립운동가]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습니다”
김마리아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던 중 1918년 동경 2·8독립선언에 참여했다. 이후 2·8독립선언문 10여장을 복사해 국내로 들여온 선생은 교육계 지도자 등을 만나 재일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보고하고, 국내 독립운동에 적극
나라사랑신문   2019-02-01
[이달의독립운동가] 광복을 눈앞에 두고 옥중 순국한 한인애국단원
유상근 선생은 한학을 공부하다 집안 사정으로 북간도, 용정촌 등으로 이주하다 19세 되던 해 하얼빈으로 갔다. 1930년 경 상하이로 옮긴 선생은 그곳에서 김구 선생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영국인이 운영하는 버스회사의 검표원으로 취직했으나 생활이 어
나라사랑신문   2018-12-03
[이달의독립운동가] 유학자, 총을 들고 독립운동에 나서다
조경환 선생은 유학을 공부한 학자로 1907년 12월 김준 의진에 합류해 좌익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좌익장을 맡은 선생은 함평읍. 창평 무동촌, 장성 낭월산, 영광 월암산, 광주 어등산 등 수많은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했다.1908년 어등산에서 일
나라사랑신문   2018-11-01
[이달의독립운동가] 앎이 조국 독립의 힘이다
현천묵 선생은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1906년 보성학교 학감으로 본격적인 교육활동을 시작했고, 1909년 보성학교의 교장과 경성향교에서 일하며 지역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1907년 이후 계몽단체인 대한협회 경성지회에 참여해 이후
나라사랑신문   2018-10-01
[이달의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
최용덕 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경술국치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상을 익혔고, 1916년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단기서 군의 제2사단에서 복무했다. 중국에서 1919년 3·1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선생은 중국 베이징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청
나라사랑신문   2018-09-03
[이달의독립운동가] 단군 중심 민족서사 저술 국민애국혼 고취
김교헌 선생은 18세에 정시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1898년부터 독립협회에 몸담기 시작했다. 독립협회 간부진이 고종과 내각을 대상으로 개혁내각 수립과 의회개설운동을 요구하다 구속되자, 독립협회 대표위원으로 민중계몽에 앞장섰다.1906년 동래부사에 임명
나라사랑신문   2018-07-31
[이달의독립운동가] 임시정부 지키며 독립운동 토대 마련하다
연미당 선생은 1908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임시정부 공립학교인 인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7월 독립운동가 엄항섭 선생과 결혼했다.결혼 이후 선생은 남편을 내조하며 자녀들의 교육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다가 1927년 11월 상해에서 결성된 중국
나라사랑신문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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