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1일 한미 연합 전시증원 야외기동훈련에 참가한 한미 장병들이 부산항 내 미 19지원사령부에서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출발하고 있다.
2022년 10월 21일 한미 연합 전시증원 야외기동훈련에 참가한 한미 장병들이 부산항 내 미 19지원사령부에서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출발하고 있다.
미 순환배치 전력 장병들과 육군2작전사령부 군사경찰대 장병들이 이동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조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방일보.
미 순환배치 전력 장병들과 육군2작전사령부 군사경찰대 장병들이 이동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조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방일보.

2023년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인 동시에 한미동맹이 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한미동맹은 지난 70년 동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며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지켜왔을 뿐 아니라 한국의 경제·사회·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나라사랑>은 군사·안보동맹에서 시작한 한미동맹이 국제질서의 변화와 도전을 극복하며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해온 지난 역사를 짚어보며 앞으로의 미래를 전망한다.

70년 전 한국이 한미동맹 체결을 제안했을 때 미국은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끈질긴 노력으로 1953년 10월 1일 역사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가조인 된 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리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국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적 도약을 이뤄내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발전했다. 2022년 기준 국민총소득은 3만 2,886달러로 1953년 66달러에 비해 약 500배 증가했으며, 세계 6위권의 군사력과 170억 달러 규모의 방산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비약적인 성장은 한미동맹의 역할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북한 도발 억제해온 주한미군

주한미군은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실천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으로 인계철선 역할을 감당했다. 즉 주한미군의 주둔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강력한 방어기제였던 것이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공식적으로 주둔하기 시작했다.

6·25전쟁 이후 32만여 명이었던 주한미군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에 따라 지난 70년 동안 수 차례에 걸쳐 감축되면서 현재는 2만8,0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그때마다 한국은 안보 공백과 전력 약화를 우려했으나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보완 수단으로 국군의 전력증강 지원과 대한방위공약이 변함없음을 천명함으로 안보 불안을 해소했다.

특히 한미 양국은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을 통해 굳건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양국은 한미연합사를 중심으로 대북억제력을 강화해왔으며, 2015년에는 세계 최초로 한미연합사단을 창설해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렇듯 한미는 한미연합방위체제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보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고, 한국의 안보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양국은 연합방위체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 환태평양훈련 등 다양한 연합연습과 훈련을 연례적으로 실시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한미 양국은 북한의 도발 억제와 연합전력의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전투기술을 숙달하고 있다.

월남 파병, 동맹관계 성숙의 계기

국군은 6·25전쟁 이후 ‘한미합의의사록’을 통한 미국의 군사원조를 통해 재정비를 완료하고 약 70만 명의 강군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파병 요청으로 1964년 9월부터 이뤄진 국군의 월남 파병은 한미동맹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국은 월남 파병으로 국군의 전투 경험 축적과 주한미군의 계속적인 주둔 보장, 대미수출 증가를 비롯해 혈맹으로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한미관계도 국군의 월남 파병으로 점차 상호의존 관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월남전쟁 파병 이후에도 한국은 한미동맹 정신에 입각해 1991년 걸프전쟁 시 의료지원단 파병, 1993년 소말리아 상록수 부대 파병을 시작으로 유엔평화유지활동과 다국적군 평화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적극 동참해 동맹국으로서 의무를 다함으로 한미동맹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또한 양국은 동맹국 간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협의체를 설치해 운영해 왔다. 양국은 월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1·21 청와대 기습미수사건 등 북한의 잦은 도발로 한미 간 고위급 협의체인 한미안보협의회의를 운영해 주요 국방 현안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한미는 양국 합참의장 간 협의체인 ‘한미군사위원회’를 비롯해 한미통합국방협의체 등 실무자급과 차관급 협의체를 운영해 안보 현안에 대해 상호 협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양국은 주요 현안이었던 주둔군지위협정,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전·평시 작전통제권 전환, 용산기지 이전사업 등의 현안에 대해서도 협의체를 구성해 원만하게 처리함으로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유지해 오고 있다.

1950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에서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이 서명을 하고 있다.
1950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에서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이 서명을 하고 있다.
1971년 제4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양국 대표들이 악수하고 있다.
1971년 제4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양국 대표들이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 선언’ 핵협의그룹 출범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성립 시부터 주된 목표였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는 한미동맹의 최우선 순위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북한은 1991년 체결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고도화·정밀화하고 있고, 지속적인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또한, 한미확장억제전략위원회와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통해 확장억제 수단을 군사수단에 국한하지 않고 외교·정보·경제영역까지 확대해 억제·대응효과를 배가했다.

2023년 4월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협의체인 ‘핵협의그룹’을 설립할 것을 선언한 후 7월 18일 제1차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워싱턴 선언’은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질적으로 제고하는 전환점이 됐으며, 이로써 한미군사동맹은 핵무기를 포함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군사동맹으로 진화했다.

한편 양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의 포괄적 미사일 대응작전개념’을 수립해 구체적인 작전수행절차를 보완하고 발전시켰으며, 2017년 사드체계를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국군은 독자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응징적 억제차원의 대량응징보복으로 구성된 ‘한국형 3축체제’를 구축해 시행하고 있다.

미국 경제원조, 경제성장에 기여

한미동맹은 한국의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 미국의 경제원조는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재건하고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디딤돌이 됐다. 1954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무상군원은 54억7,000만 달러, 군원교육은 1억7,000만 달러, 대외군사판매는 50억5,000만 달러, 대외군사판매 차관은 23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미국의 경제원조는 한국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종잣돈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압축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동맹의 역할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한미는 경제 분야에서도 호혜적인 경제파트너로 발전했다.

양국의 경제 관계 발전은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한미동맹이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하는 데 가교적 역할을 했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국과 경제 협력을 통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바뀌었다.

아울러 오늘날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한국의 방위산업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국의 첨단무기체계 도입과 특정한 무기를 공동 개발하거나 면허생산한 경험을 축적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양국은 방산기술협력위원회를 통해 과학기술협력을 증진하고 있고, 2023년 한미정상회담에서 공급망 재편, 국가 기술패권 경쟁 심화에 따라 양국의 협력을 강화해 한미동맹을 기술동맹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안보위협 대비 공동대응 강화

기후변화, 사이버, 우주, 신기술 등 새로운 안보 위협이 대두됨에 따라 한미동맹은 포괄적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심화하고 있다.

양국은 보건 협력을 통해 신종감염병, 북한의 생물학 무기를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협의를 강화하고 있다. 또 사이버·우주분야 협력을 위한 사이버정책실무협의회, 한미 국방우주협력회의를 연례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특히 한미 양국은 2022년 ‘한미 우주정책 공동연구’를 통해 양국 국방부 간 우주 정책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우주 안보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동맹차원의 대응 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한미동맹은 전통적 안보 위협에 더해 신흥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영역은 이제 사이버, 우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가치동맹 기반한 글로벌 전략동맹

한미동맹은 다양한 제도화를 통해 한미동맹의 안정성을 높임으로써 70년의 역사를 유지해 오고 있다. 동맹의 지속을 위해서는 지난 70년의 한미동맹 역사를 바탕으로 건설적인 한미동맹의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2023년 한미동맹의 미래 발전 방향과 관련해 “군사·안보 동맹에서 점차 가치동맹의 주춧돌 위에 안보·산업·과학기술·문화·정보동맹이라는 5개의 기둥을 세우고, 지난 70년 동안 역내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으로 기능해 온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한미동맹이 계속 진화할 것이며, 어느 일방이 아닌 쌍방 간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한미동맹 70년의 역사는 앞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한국의 비약적인 성장에는 한미동맹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에서 보듯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한미동맹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지난 역사에서 보듯이 안보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동맹관계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특히 북한의 고도화·정밀화하고 있는 핵·미사일 위협은 한미동맹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위협에 맞서 양국은 상호 협의를 통해 최적의 대응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이루는데 한미동맹이 하나의 수단이자 방법임을 잊지 말고 동맹관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혜택은 미래 세대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최정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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