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을 앞두고 부산 남구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으로 향한다. 그늘을 드리우는 비구름이 오가며 이곳의 풍경과 분위기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유엔기념‘공원’이라는 명칭이 붙어있지만 이곳은 사실 ‘묘지’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수많은 유엔군전몰장병들이 안식을 취하고 있는 곳으로, 모든 조경과 시설이 묘지를 중심으로 서 있다. 따라서 이곳은 성역처럼 다소 위엄을 갖추고 자리잡은 듯 느껴진다.거대한 네 개의 기둥과 한국 고유의 아름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남침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일순간 무너졌다. 국가적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던 이 상황은 유엔이 미국의 주도적 역할 아래 적극적인 개입을 결정하면서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유엔군을 파견하는 결단은 유엔 창설 이래 첫 조치였다. 미국을 주축으로 전투부대를 파견한 16개국과 의료지원부대 등을 파견한 나라들은 대한민국 수호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전쟁으로 피해 입은 많은 사람들의 구호와 전후 복구에 최선을 다했다.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 유엔군 참전과 역할을 정리한다.유엔군의 참전 과정과 배경
6·25전쟁은 유엔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한 대한민국을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공격한 불법적인 남침전쟁이자 ‘국제전쟁’(international war)이었다. 또한 6·25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국가가 유엔헌장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국제평화를 유지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자유수호’ 전쟁이었다.3년 1개월의 6·25전쟁 기간 동안, 유엔회원국 중 16개국이 전투부대를 파병했고, 6개국이 의료지원 및 시설을 보내왔다. 그 결과 6·25전쟁에 참전한 인원은 196만여 명이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에 위치한 한국전 기념공원 찬란한 초록빛으로 가득한 가운데 검은색 대리석으로 된 반원 모양의 기념비가 서있다. 기념비의 오른쪽에는 대한민국의 지도가 왼쪽에는 국제연합기가 새겨져 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며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한국전 기념공원은 구석구석 깔끔했다. 지난 3년간 정기적으로 이곳을 청소해온 3명의 미국 고등학생 덕분이었다. 유리 장(Yuri Jang, 16세), 알렉스 말프레조(Alex M Malfregeot, 18세), 다니엘 신(Daniel M. S
지난 7월 17일은 제 72주년 제헌절이었다. 제헌절은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이다. 제헌절을 글자 그대로 보면 헌법을 제정한 날이다. 하지만, 현재의 헌법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나라 헌법은 7월 12일에 제정되었다. 7월 17일은 초대 국회의장이던 이승만 의장이 헌법안에 서명하고 공포함으로써 헌법의 효력을 발생시킨 날이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현재의 7월 17일은 헌법을 공포한 공헌절(公憲節)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헌법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최상위 법 규범으로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 기본권에
분과학문으로서의 보훈학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넘어서 국가보훈에 대해 대중과 지속적으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보훈학은 보훈연구가 현대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공동체 위기와 공공성 확보를 실체화 및 외부화하기 위해 보훈실무자와 연구자를 넘어서 대중과 더불어 국가보훈을 성찰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문을 지향한다.국가보훈의 분과학문 모색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한 보훈인가’와 ‘무엇을 위한 보훈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보훈공동체에만 안주하는 연구 및 교육활동에 문제를 제기하고 상대화하는데서
92세의 노병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다. 야속할 정도로 긴 시간 애타게 그리워했던 전우들이 유해로 고국의 땅을 밟았다. 그는 미국에서 온 국군전사자 중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한 7인의 이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름 없는 140구의 유해를 보며 70년 전 전장에서 스쳐간 수많은 전우들을 떠올렸다. 박운욱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이 만난 6·25전쟁 70주년은 그래서 특별했다. 그들에게 일일이 건네는 인사가 주변을 엄숙하게 했다. 모든 순간에서 이제껏 살아온 삶과 전쟁과 전우가 스쳐지나갔다.기념 행사 후 다시 만난 그는 남아 있는 ‘의용군
3·1 만세운동으로 모아진 독립을 향한 꿈이 구체적인 독립전쟁으로 이어진다. 3·1운동 다음해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이뤄진 항일 독립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이자, 조국 독립을 향한 간절한 의지였다. 그로부터 100년, 오늘 다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질시하고 흔들려는 주변국 속에서 당당하게 일어서고 있는 우리의 자존심이자 민족적 역량에 대한 재확인이다. 100년 전의 전투현장 그 속에서 우리는 독립과 용기와 희망을 함께 발견한다. 봉오동전투 - 국내 진공을 위한 첫
사람은 누구나 특정한 날을 기념하여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구성원 사이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확보하려 한다. 우리는 이를 정체성이라 말한다.그런데 정체성은 고정 불변이 아니다. 모든 기억은 유기체이며 현재의 시재를 반영하면서도 현재에 존재하지 않고 과거의 존재를 불러 미래를 말하려고 한다. 사람의 기억이 개별적인 사실들의 퇴적 과정에서 보존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기억의 역동성은 개인과 국가를 구별하지 않는다. 특히 국민국가 만들기에서 기억은 학교와 사회 교육에 의해
보훈처 예우정책과 안준범 연구원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공항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독립유공자 계봉우·황운정 애국지사의 유해봉환식이다. 이날 계봉우 지사의 유족들은 ‘죽으면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유언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대통령이 최고의 예우로 맞아주어 크게 감격했다. 이 역사적인 유해봉환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로 뛴 안준범 연구원(44)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국외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작고 후 현지에 안장된 순국선열의 묘소를 찾아 관리하고, 유해를 국내로 봉
짙어진 녹음과 함께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화창한 날씨의 6월. 이른 아침부터 국립대전현충원은 현충일을 맞아 참배객들로 붐볐고, 현충문 앞은 추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가운데로 한 어르신이 손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다소 긴장한 표정의 어르신은 그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기로 돼 있었다. 바로 국군간호사관학교 1기생으로 참전한 이현원(87) 씨다. 올해 초 이현원 씨는 전북동부보훈지청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거기가 이현원님 댁 맞습니까? 저희는 6
6.25를 맞는 달 6월은 늘 사라지지 않는 초연의 자취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남북 분단 상황의 종식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열망이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목함지뢰로 인해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전쟁에서 평화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2015년 목함지뢰로 인해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가 지난해 새삼스럽게 화재가 된 것은 국방부는 군인사법에 따라 ‘전상’판정을, 보훈처는 이를 뒤집고 ‘공상’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판정
국가나 집단 간에 전쟁과 같은 무력 충돌은 없을수록 좋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군대는 불가피하게 존재하게 된다. 군대의 근간은 당연히 군인이다. 군인 가운데 일반 의무복무사병이 나무의 가지와 잎과 같다면, 이들을 통제하는 관리자급 군인은 줄기와 같다. 가지와 잎은 뿌리와 줄기를 통해 양분을 공급받는다. 줄기 없는 가지는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중장기 복무하고 제대하는 이른바 ‘제대군인’에 대한 국가의 지원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제대군인 지원에 관
국가보훈처는 이달 25일 ‘든든한 보훈’ 정책브랜드를 발표하며, ‘든든한 보훈인’을 선정했다. ‘든든한’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각 분야의 역량 있는 직원을 발굴하고 격려해 솔선수범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달에는 행정직원부터 연구원, 직업상담사, 보훈복지사와 보훈섬김이, 의료인 등을 포함해 12명의 보훈처 직원들이 든든한 보훈인으로 선정됐다.대구보훈병원 박규환 전문의 지난 2월 대구와 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가운데 대구보훈병원은 감염병전담기관으로 지정됐다. 대
녹음이 짙어가는 6월. 우리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기억한다. 그리고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 대한민국을 되찾고, 지키고, 바로 세운 모든 이들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다시 맞는 호국보훈의 달과 6·25전쟁 70주년은 ‘기억’ ‘함께’ ‘평화’라는 단어로 다가온다. 은 나라를 지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6·25전쟁의 한 장면 ‘낙동강방어선전투’를 기억하면서, 함께 호국을 생각하고 다시 평화를 바라보고자 한다.전쟁은 과거이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과거를 딛고 오늘이 있다. 우리에게 6·25전쟁은 민족의
낙동강방어선전투의 최전선이 치열하게 벌어진 곳은 경상북도 칠곡이다. 칠곡은 당시 임시수도였던 대구로 향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러 기념관과 전적비가 남아 격렬했던 당시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전투현장이었던 칠곡은 벌써 본격적인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왜관철교첫 현장으로 찾은 곳은 왜관철교. 당시 칠곡군에서도 왜관읍과 다부동은 낙동강방어선의 중심에 있어 포화가 집중됐다. 전쟁 당시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고자 낙동강방어선의 모든 교량을 폭파했고, 낙동강구철교로 불릴
55일간의 낙동강방어선전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이곳은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야외에는 참전한 군인과 노무자, 간호사 등 호국영령의 모습을 형상화한 호국평화탑과 참전용사비와 함께 호국영령의 드높은 기세처럼 거대한 55m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기념관으로 들어서면 1층 로비에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상징화한 구멍난 철모와 55개의 탄피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2층 전시관에는 6·25전쟁의 시작부터 낙동강전투,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투체험관과 유아평화체험관,
활짝 열린 문 안으로 걸음을 내딛으면 은은하게 풍기는 염색약 냄새와 함께 향수를 자극하는 옛 이용원의 모습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진다. 넓고 안락해 보이는 의자와 소파, 하얗고 풍성한 거품을 내주는 거품기와 칼날 교체용 면도기, 면도 거품을 더는 데 쓰는 종이,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수동 바리캉까지. 그리고 인자한 미소의 신문섭(73) 씨가 방문객들을 반겼다. 충남 보령시 한내시장 골목 입구에 위치한 장수이용원. 이름만큼 정겨운 이곳이 평생을 봉사활동으로 살아온 신문섭 씨의 일터이다. 신문섭 씨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국민을 위로하고자 5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구리 동구릉 숲길을 포함한 조선왕릉 숲길 9선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이 중 특히 동구릉 내 휘릉과 원릉 사이 숲길 1.4km 구간은 이번에 처음 개방하는 구간으로, 5~6월에 종모양의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때죽나무가 왕릉 소나무의 초록색 빛과 어우러져 숲길의 아름다움을 더한다고 한다.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선의 궁궐·종묘·사직·왕릉의 효율적 보존관리와 활용을 위해 2019년 1월 1일 출범하였다. 궁능유적본부는 대한민국을
정부의 정책은 내‧외부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며, 정책에 요구되는 수요가 무엇인지 정확히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이것을 보훈복지에 한정해 보면, 우선 내부 환경 요인으로 ‘지속되는 고령화’를 들 수 있다. 현재 보훈대상자 중 70대 이상의 비율은 전체 대상자 대비 70%에 육박한다. 또한 보훈대상자를 추계한 선행연구에 의하면 향후에도 당분간 고령화는 지속될 전망이다.한편 외부 환경 변화로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요양이 필요해져도 내가 살던 집과 마을에서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