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은 내‧외부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며, 정책에 요구되는 수요가 무엇인지 정확히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을 보훈복지에 한정해 보면, 우선 내부 환경 요인으로 ‘지속되는 고령화’를 들 수 있다. 현재 보훈대상자 중 70대 이상의 비율은 전체 대상자 대비 70%에 육박한다. 또한 보훈대상자를 추계한 선행연구에 의하면 향후에도 당분간 고령화는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 외부 환경 변화로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요양이 필요해져도 내가 살던 집과 마을에서 죽을 때까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의 정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최근의 사회복지정책은 지역 내에서 1차로 건강과 복지를 통합하여 조사하고 지원하는 통합 돌봄 체계로 옮겨가고 있으며, 다양한 리빙랩(Living Lab)을 통해 지역 내 고령층의 돌봄과 건강지원 사업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리빙랩이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일상생활의 실험실’을 뜻하는데, 정보기술(IT) 기술의 발달로 과학과 사회 현장을 통합해 수요자 중심의 정책 실현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현실화를 보다 실천적으로 정의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말하는 리빙랩은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살아온 지역사회에서 여생 보내기)’의 적극적인 현장 도입을 지향하는 실천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 도시 재생 등의 분야에 먼저 도입됐지만, 해외에서는 주로 헬스 케어, 웰빙 등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헬스와 웰빙 분야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 미네소타 주의 ‘웰리빙랩(Well Living Lab)’을 들 수 있는데, 실내 환경 변화에 따른 신체 반응 등의 체계적 연구를 수행하며 주거복지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벨기에의 ‘리카랩(Licalab)’은 암, 재활 치료 보조기기, 자세교정 보조기기 등 질병 예방 및 안전을 위해 의료진과 기술자의 협업을 통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오랜 기간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을 목표로 고령 친화적인 마을 만들기 리빙랩을 실천해 왔다.

지난 2월 5일 열린 국가보훈처 로봇의족 시연회에서 선보인 로봇의족. 국가보훈처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해 로봇의족을 개발 중이다.

이처럼 리빙랩은 복지나 의료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 문제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핵심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기술을 접목시킬지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보훈 관련자라면 이미 복지와 의료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있으며, 보훈 복지 현장에 정보기술의 도입도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복지는 복지대로, 의료는 의료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발전할 수 없다. 유기적으로 협업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공유하여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리빙랩을 보훈 정책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선행 과제들이 있다. 우선, 리빙랩은 수요자 중심의 정책으로 수요자들이 어떤 욕구(수요)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 기존의 중앙 정부 중심의 정책과 달리 현장 위주의 수요 발굴과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상향식 방식의 정책 구현을 위한 유연한 행정 체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한 연구개발 지원, 보훈처와 공단의 임시 조직(TF) 구성 및 정보 공유 체계 마련 등이 연속성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과학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스마트한 삶의 제공은 보훈대상자가 거주하는 자택일 수도 있고, 요양원이 될 수도 있으며, 병원이 될 수도 있다. 각각의 환경에 맞는 그리고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이 고령화를 대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택에 거주하는 독거 고령자들에게는 기억력 강화 활동과 낙상 예방 운동 결과를 가족들이 스마트폰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고, 요양원의 낙상 사고와 관련해서도 낙상을 방지하거나 낙상 시 충격을 흡수하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낙상 시 충격을 예방해주는 ‘힙 세이프(Hip Safe)’, 몸에 착용하는 로봇도 있다. 이처럼 과학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은 고령화로 혼자 사는 사람이나, 복지나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사물인터넷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어떤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고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보훈 관련자라면 항상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훈 대상자들의 고령화 역시 세대가 교체되고 있어 이전과 동일한 정책 시행만으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보훈 대상자들의 수요에 맞추어 사람과 기술이 적절히 융합된 보훈만의 리빙랩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자(전 보훈교육연구원 연구원, 사회복지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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