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한결같은 손길로 손님의 머리를 다듬어온 신문섭 씨.

활짝 열린 문 안으로 걸음을 내딛으면 은은하게 풍기는 염색약 냄새와 함께 향수를 자극하는 옛 이용원의 모습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진다. 넓고 안락해 보이는 의자와 소파, 하얗고 풍성한 거품을 내주는 거품기와 칼날 교체용 면도기, 면도 거품을 더는 데 쓰는 종이,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수동 바리캉까지. 그리고 인자한 미소의 신문섭(73) 씨가 방문객들을 반겼다. 충남 보령시 한내시장 골목 입구에 위치한 장수이용원. 이름만큼 정겨운 이곳이 평생을 봉사활동으로 살아온 신문섭 씨의 일터이다.

 

신문섭 씨는 충남에서 평생을 보내며 지난 50년간 이발봉사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10대에 일찌감치 이발 기술을 배웠고, 20대 초반 군대를 다녀온 후로 본격적으로 이용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그 시절, 생활은 힘들었지만 가슴 한 편에는 늘 자신보다도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 살았다.

결혼 후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의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이발봉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50년 봉사인생이 시작됐다.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 자전거로 가게를 오가며 가위를 들고 인근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병환으로 이발소 나들이가 어려운 사람, 한 푼이 아쉬워 이발할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 댁에 간 적이 있어요. 낮에 방문해서 이발을 해드리고 왔는데 그날 저녁에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의 가족분들이 찾아와 연신 고맙다 하시더라구요. 어르신 가시는 길에 단장해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 말입니다.”

이웃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계속 봉사를 이어가자 주변에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요청을 받아 요양원이나 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한 이발봉사를 가기도 하면서 그의 따뜻한 봉사지는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 이발을 하러 온 인근 중학교 선생님들로부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육성회비를 몇 년 동안 지원해주며 시작한 장학사업도 점차 커졌다. 그렇게 켜켜이 쌓은 세월은 대통령 표창장부터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 충남도지사 표창장, 부여군수 표창장, 보령시장 표창장으로 돌아왔다.

50년간 지역을 지키며 온기를 나누며 살다보니 그의 좋은 활동을 응원하는 단골손님도 많아졌다. 대를 이어 그의 이용원을 찾는 손님도 많다. 이발사와 손님을 넘어 좋은 이웃이자 가족과도 같은 사이가 된 것이다.

“지금은 이용원을 찾는 사람이 전처럼 많지 않지만 젊은 시절에는 하루에 4∼50명씩 몰릴 때가 있어요. 한 날은 손님이 많아서 녹초가 된 채로 중풍에 걸린 분의 댁을 찾아갔어요. 그분은 앉을 수가 없는 상태라 누운 채로 머리를 다듬어드리고 거울을 보여드렸더니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시더라고요. 피곤한 것도 잊어버렸죠. 그 웃는 얼굴을 보면 봉사활동을 멈출 수 없지요.”

이발을 마친 사람들의 미소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온 시간이 그에게는 평범한 일상으로, 어느덧 ‘봉사’가 아니라 ‘생활’이 되어 있었다. 그는 몸소 실천해 온 이웃사랑의 마음으로 20년째 이발비용을 올리지 않고 여전히 5,000원을 받는다. 이정도 가격이면 이발 자체가 봉사인 셈이다. 덕분에 이용원은 시가 선정하는 ‘착한가게’가 됐다.

“욕심 안 부리고 살면 괜찮아요.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오래도록 이 생활을 이어가는 겁니다. 가족들 화목하고, 손님들과 서로를 챙겨주며 사는 지금이 계속 되면 좋겠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오래 봉사를 해나가려 합니다.”

신문섭 씨는 지난해 심한 가슴통증으로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국내 고엽제 후유증에 따른 공상군경으로 인정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됐다. 올해 2월 발급받은 국가유공자증은 이용원 정면에 자랑스럽게 게시돼 있었다. 요즘은 눈에 띄게 체력이 떨어져 몸이 예전 같지 않기도 하고,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요양원과 같은 단체봉사도 어려운 상황이다. 얼른 스스로 건강을 회복하고 코로나19도 끝나 출장봉사와 단체봉사도 재개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밝은 미소에서 봉사로 단련된 삶의 깊이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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