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방어선전투의 최전선이 치열하게 벌어진 곳은 경상북도 칠곡이다. 칠곡은 당시 임시수도였던 대구로 향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러 기념관과 전적비가 남아 격렬했던 당시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전투현장이었던 칠곡은 벌써 본격적인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호국의 다리’로 탈바꿈한 왜관철교.

왜관철교

첫 현장으로 찾은 곳은 왜관철교. 당시 칠곡군에서도 왜관읍과 다부동은 낙동강방어선의 중심에 있어 포화가 집중됐다. 전쟁 당시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고자 낙동강방어선의 모든 교량을 폭파했고, 낙동강구철교로 불릴 만큼 낙동강 유역에서 중요한 거점을 차지하고 있던 철교가 왜관철교. 당시 폭파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70년 전의 모습을 일부 갖추고 있다.

구한말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만든 경부선 철교로, 1940년대부터 국도로 활용되다 전쟁으로 폭파되지만 복구돼 인도교로 거듭났다. 90년대 초 보수작업을 거쳐 이제는 ‘호국의 다리’로 탈바꿈해 당시 상흔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6월이면 이곳에서 호국 시화전이 열리는데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미래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노래한다는 취지다. 전쟁을 몸소 겪었던 이들과 문인, 학생들이 동참하며 새로운 호국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는 전쟁을 잊은 듯 잔잔했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안내판을 읽어내려가며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학산, 다부동전투

왜관철교를 지나 유학산과 다부동에 이르는 동안 여러 전적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다부동 주변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산성이 구축됐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6·25전쟁 때도 예외는 없었다. 다부동과 다부동을 감싸 안은 형세의 유학산에서 6·25전쟁 당시 많은 생명들이 처절하게 스러져갔다.

이곳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사활을 다했다. 특히 고지탈환전이 격렬했는데 328고지는 10여 차례나 그 주인이 바뀌었다. 매일 혈전이 벌어져 양쪽 다 엄청난 피해를 입어 유학산 골짜기는 시산혈하가 됐다.

돌산인 유학산은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가 험난한 곳이다. 등산로는 잘 구성돼 있었지만 정상 부근은 암벽이 많고 경사가 있어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험난한 산길을 한여름 더위 속에서 밤낮 구분 없이 전투를 벌이며 뛰어올랐을 호국영령의 거친 숨소리가 스치는 듯 했다.

유학산 정상 표지석 뒷면에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립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 일대는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유골과 전쟁유품이 집중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유학산 일대와 다부동전투의 승리와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칠곡군 가산면의 호국로 1486에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고, 이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다부동전승비가 위치해 있다. 최초의 전차전 일명 볼링앨리전투가 벌어졌던 곳임을 알리며 전차모양을 형상화한 다부동전승비가 작지만 늠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북 상주시 화령전승기념관에서 동관1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동관리전투 안내판.

화령장전투

낙동강방어선 구축을 가능하게 한 국군의 지연전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 북한군 15사단의 2개 연대를 괴멸시키며 대승을 거둔 전투가 있었다. 바로 화령장전투다.

화령장은 현재 경북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평화로운 곳이지만 70년 전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당시 이곳은 보은과 괴산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 남하하던 북한군은 이곳을 점령한 뒤 대구로 진출하려고 했다. 화령지역에 주둔하던 국군17연대가 동네주민들의 정찰활동 덕분에 북한군이 알려지지 않은 이동로로 지나가고 있음을 파악해 상곡리와 동관리에 매복해 있다 적군을 섬멸한 곳이다.

상곡리전투에서 북한군이 주둔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송계분교 자리에는 현재 화령전승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학교 건너편 산기슭에 매복하기 위해 구축했던 진지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짙은 녹음으로 외지인의 눈으로는 찾기 어려운 평범한 산지였다. 동관리전투 현장에는 작은 안내판 하나만이 역사적 승리를 기록해두고 있었다.

짙은 새벽안개 때문에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장시간 매복하며 정확한 순간을 기다렸을 국군의 뜨거운 투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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