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의 노병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다. 야속할 정도로 긴 시간 애타게 그리워했던 전우들이 유해로 고국의 땅을 밟았다. 그는 미국에서 온 국군전사자 중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한 7인의 이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름 없는 140구의 유해를 보며 70년 전 전장에서 스쳐간 수많은 전우들을 떠올렸다. 박운욱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이 만난 6·25전쟁 70주년은 그래서 특별했다. 그들에게 일일이 건네는 인사가 주변을 엄숙하게 했다. 모든 순간에서 이제껏 살아온 삶과 전쟁과 전우가 스쳐지나갔다.

기념 행사 후 다시 만난 그는 남아 있는 ‘의용군’ 명예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22세의 박 회장은 고국에서 날아든 첫 비보에 37명의 친우들은 함께 당장에 박차고 떨치고 일어나 지체 없이 전장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지만 찌는 듯 한 더위도 자원입대하는 그들의 열정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미군 통역병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전투, 흥남철수작전 등에 참가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에 함흥과 흥남, 부산, 경주, 안동, 충주, 원주 등 전장을 누볐죠. 특히 극심한 추위로 전상자보다 동상으로 인한 부상자가 더 많았던 장진호전투의 참혹함은 지금도 고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따금 소식이 끊긴 전우들을 생각했다. 그럴 때면 충남 천안의 망향의 동산에 들러 먼저 간 전우들을 찾았다. 그리고 매년 잊지 않고 일본을 방문해 전사한 재일학도의용군 유가족들을 일일이 챙겼다.

“이제 생존 재일학도의용군은 몇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후세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최후까지 나라를 위해 정말 아낌없이 싸웠습니다. 그것 하나만 역사가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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