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을 맞아 낡은 한옥에 살고 계시는 6·25참전유공자 어르신 댁을 직원들과 함께 방문하였다.마당 곳곳에 쌓아놓은 쓰레기를 치우고 집안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대청소를 하기 위해서였다. 백발의 참전유공자 어르신은 보훈청 직원들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 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손수 음료수를 챙겨주시고 고구마까지 삶아 주셨다.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외롭게 생활하시는 어르신은 집안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하신 것 같았다. 가뜩이나 좁은 마당을 발 디딜 틈 없이 차지하고 있던 각종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화장실
속담이나 격언의 묘미는 해학적 알레고리에 있다. 더하여 경구로서의 문학성 뿐 만아니라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짧은 문장 속에 인문학의 진수와 철학이 담겨 있어 촌철살인의 짜릿함도 곁들인다. 이를 적절하게 구사하면 의사 전달도 명료해질 뿐만 아니라 대화를 풀어나가는 기지로도 한 몫 한다.그런데 아무리 곱씹어 봐도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격언은 개운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말은 ‘누가 어떤 자리를 맡을 때는 그에 걸맞은 경험과 능력, 그리고 식견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의 비유로 이해되기는 한데, 한 편으로는 ‘몰라도 되
복대(腹帶)는 허리 수술을 하였거나 부실한 척추를 받쳐주기 위해 허리에 두르는 넓적한 띠를 말한다. 때로는 노인들의 허리에 둘러져 허약한 상반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어머니도 그런 복대를 두르고 사셨다. 어느 날 가실 데가 있다며 채비를 하시는데 배 안쪽에 접어서 돌돌 말은 수건을 덧대고 복대를 두르신다. 야윈 체격의 어머니는 뱃집이 없어서 자꾸 앞으로 숙여지기 때문에 그걸 복대 안쪽에 대고 두르면 그나마 힘이 되는 모양이다. 복대 안쪽에 감춰진, 어머니의 뱃집을 대신하는 그 수건의 소용을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꼿꼿하던
“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 어둑어둑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 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 국물이 끓어 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안도현의 시 ‘통영서호 시장 시락국’ 전문이다. (시락국은 시레깃국의 다른 말이다)꽁꽁 언 겨울 새벽시장. 장거리를 거간꾼에 맡긴 사람이나 난전 자리를 미리 잡아 놓은 사람들이 아직 전을 펴기에도 장돌림을 하기에도 이른 시각, 언 손도 녹이고 빈속도 데울 겸 시락국집에
내 나이는 이제 한 달만 지나면 80이 된다. 그것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죽을 날이 매우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지난날들을 자주 돌아보게 되고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회한에 빠지는 날들이 많아졌다.지금 나이의 절반쯤 됐을 무렵이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도시의 통상생활에서 벗어나 남쪽 해안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며칠이고 해안을 훑어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널따란 평지를 찾아내 그곳에 통나무집 한 채를 지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거듭했다. 집 안에는 방 둘과 마루와 부엌을 들이고 부뚜막에는
우리 전남동부보훈지청에서는 전쟁의 아픈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참전유공자들을 위한 의미 있는 행사를 구상하던 중 옛 전우 만남을 통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마련된 것이 ‘보고 싶다, 그리운 전우야!’라는 행사다.지난해에도 6월과 11월 경 여수지역 거주 어르신을 대상으로 각각 서울과 경북 영덕에 사시는 전우를 찾아드리고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찬사를 받은 일이 있어 시작부터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함께 찾아왔다.우선 보훈섬김이를 통해 상봉 신청자를 접수받은 후,
나는 요즘 가급적 사람 만나기를 피한다. 사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 귀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그런 귀로 남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해서 낭패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전과는 달리 나는 아내를 수시로 찾는다. 그녀 말은 무엇이든 귀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질 때도 있다. 그러나 말하는 그녀의 입만 주목하면 그녀의 말뜻을 알아채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50여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오늘 새벽 산책도 그녀와 동반이다. 땅만 보고 걷는 나에게 그녀는 쉬지
나는 요즘 한 달에 한번 머리 깎고 다듬는 즐거움으로 산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얼굴은 점점 더 검어지고 머리칼은 가늘어지면서 빠지더니 이윽고 정수리를 중심으로 하얗게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나는 젊어서부터 머리나 얼굴 다듬기를 게을리 했다. 늙어서는 그 게으름이 더 심해졌다. 머리칼이 자라는 대로 놔뒀다가 귀를 덮을 지경이 되어서야 이발관을 찾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요즘 월 1회 머리 커트를 한다는 자발적 규칙을 만들어 조상의 기일처럼 지키고 있다. 머리칼만 빨리 자라준다면 그 회수를 월 2회로 늘리고 싶기까지
일흔 넘도록 살아오면서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백세시대라 일흔은 어쩌면 청년기를 갓 지난 황금기라고도 하지만, 우리 세대는 참 어렵게들 인생 고비들을 살아와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어린 시절은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보호와 사랑을 많이 받았고, 막내다 보니 오빠 언니의 사랑도 남다르게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십대 때는 자주 병치레한 것 말고는 고민도 걱정도 모르고 살았다. 이십대,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그리움을 배웠다. 보고 싶은 사람 못 만나서 아쉽고, 그 아쉬움은 목마름을 더해 주었다. 이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겨우 한글을 해독하시는 정도였다. 그러나 수리에서는 성냥개비를 나열해 계산하는 솜씨가 웬만한 주판실력을 웃도는 정도였다.또 여러 가지 다양한 솜씨도 남달라 매듭짓는 솜씨는 장인수준을 넘보는 수준이었고, 집안 구석구석 엄마가 불편하지 않게 잔손을 많이 봐 주셨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 늘 가난에 시달렸지만 몸으로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마다 않고 가족을 위해 애쓰셨다. 부모님은 결혼 후 14년 만에 첫 출산을 하셨지만 불행하게도 여덟 달 키운 첫아들을 열병으로 잃었다고 한다. 다행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힘이 빠진다. 우리는 늘 기대감으로 살기 때문이다. 상상으로만 가능하고 또 새로운 일, 다른 미래가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오늘 힘을 낸다.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침에 눈을 뜨면 주어지는 하루에 우선 감사한다. 늘 같은 일상 같지만 하루를 사는데 색깔이 다르고 또 기분에 좌우되기도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허투루 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물질적인 것 말고 소득 없이 하루를 보낼 때가 더러 있다. 잠자리에 들면서 되뇌어 보면 감사할 일도 있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도 있고, 나로 인해 이웃이 혹 상처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려면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게 된다. 그 목표는 아무래도 좋을 것.걷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고 이동수단이며 모든 행동의 기본이다. 머리 위의 높고 넓은 창공에 마음을 열어두고, 대지를 밟고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우리 땅을 탐색하고 싶다. 그렇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사유와 사색, 낭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그래서 떠난 남해안 투어. 기대와 설렘을 안고 출발했다. 남해 거제에서 목포까지 20여 일이 소요될 예정이다.첫 탐사지 거제 총영의 충무공 사당 앞. 한산대첩, 장군의 포효가 들리는 듯하다. 몇 배나 우세
어릴 적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우리 세대에게 놀이란 둥근 통나무를 바퀴모양으로 잘라 네 바퀴 수레처럼 만들어 친구들과 동네 야산에서 쏜살같이 타고 내려가며 스릴을 느끼는 것과 굴렁쇠를 굴리는 것 정도였다. ‘바퀴’는 우리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주어왔다. 바퀴가 우리 인류사에 언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 고대전쟁에서 승패를 바꿔버린 트로이전쟁도 목마를 이용해 적의 심장부 깊숙이 밀고 들어간 후 적을 무찌른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벤허’에서 바퀴달린 전차가 박진감 넘치게 달리는 장면은
하늘에서는새벽 여명이 걷히고 찬란한 아침. 작열하는 장엄한 태양도, 파란하늘 달려가는 양털 같은 구름도, 붉게 타는 황금 낙조와 새들의 군무도, 그곳에 있을까.보석을 뿌린 듯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밤하늘. 초승달의 신비로움도, 유성이 흐르는 경이로움도, 은하수 전설 견우직녀 얘기도, 그곳에 전해질까. 산(山) 그곳에서는아름다운 지구. 그 핵심에 뜨거운 핵의 용틀임 있어 고산과 협곡이 형성되었다면, 초록의 향기와 청량한 물소리, 수많은 동물 새들의 노래, 애절한 벌레 울음소리도 그곳에 들릴까.봄 안개와 함께 백화가 만발하
매일 드나드는 문에도 우리 조상들은 지혜를 숨겨 놓았다.한옥의 대문은 밖에서 밀어 안으로 열리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방문은 안에서 밀어 열리도록 대문과 반대방향이다. 측간과 헛간도 마찬가지이다. 왜 유독 대문만 안으로 열리도록 했을까? 손님과 복(福)은 집안으로 맞아들이고 이 복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했다니 조상들의 톡톡 튀는 지혜가 엿보인다. 세종 때의 명신 조말생의 고손자인 조사수는 청백리였다. 언젠가 중종은 만조백관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청문(淸門), 예문(例門), 탁문(濁門)의 문을 셋으로 나눠 세우고 청백리를
설날 떡국을 먹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2월 4일이 벌써 입춘이란다. 바깥은 겨울인데 달력과 우리들 마음속엔 벌써 봄이 와 있나보다. 성급한 봄을 찾느라 달력을 들여다보니 28일 밖에 없는 2월이 안쓰러운 지 유난히도 가슴 훈훈한 사연들이 눈길을 끈다.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음력으로 2월 초하루가 ‘머슴의 날’이란다. 양반집에서 노비에게 맛있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온종일 즐기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 동안의 수고를 위로도 하고 내일부터 봄 채비와 농사준비를 열심히 하자는 주인의 속 깊은 배려가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이다.’ 어느 분의 말처럼, 행복 반 기대 반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태양을 기준으로 날을 세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달(月)이 한 번 보름달이 됐다가 기우는 것을 날 세는 기준으로 삼다보니 한 달, 두 달의 달이나 벽에 걸린 캘린더를 그래서 달력이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지금 쓰는 달력은 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므로 엄밀하게 따지면 일력(日曆) 또는 양력(陽曆)이라고 표현해야 하지만 습관적으로 달력이라 한 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국가유공자의 긍지를 갖고 살아오면서 요령껏 살지 않았고,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 아니고는 억지 부려가며 행동하는 짓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이런 성격 탓에 책임질 말이 아니면 말(言)을 갈아 탈 줄 모르고, 한번 맺은 인연은 굳이 멀리 하지 않아왔다.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확실하게 믿으면 다 내주는 순진한 속성으로 언제나 손을 맞잡고 같이 울어주는 게 탈이라면 탈이랄까. 역설적인 생각이지만 돌이켜 보면 가끔 필자가 장애인이 된 것이 감사할 때가 있다. 장애를 입은 것이 절대 감사할 수 없는 일
어느 사회든 그 사회를 이끄는 그룹을 우리는 사회지도층이라 부른다. 사회지도층은 선거로 뽑는 국회의원·시장·시의회의장·교육감 외에 전문 직종에 근무하는 분들도 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사회지도층이며, 아울러 유명 기업인도 빼놓을 수 없는 사회지도층이다. 즉 사회지도층이라 함은 사회적으로 덕망 있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 수 있는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 모두를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보도들을 보면 이들의 소외계층에 대한 편견과 사회양극화로 인한 차별이 점점 심화되고
저출산 핵가족화로 자녀를 적게 낳고 저마다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산하더라도 맞벌이 부부 형편상 보육시설을 이용하거나 양쪽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 양육을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한가위 명절을 이용해 딸과 사위가 귀여운 외손자 두 녀석을 데리고 외가에 왔다. 연년생인데다가 차돌멩이처럼 단단한 외손자들은 첫날부터 북적대기 시작하며 잠잘 생각도 않고 노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요즘 뛰어노는 손자들을 보면 문득 옛날 어르신 말씀에 ‘올 때는 와서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라는 말이 실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