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 어둑어둑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 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 국물이 끓어 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안도현의 시 ‘통영서호 시장 시락국’ 전문이다. (시락국은 시레깃국의 다른 말이다)

꽁꽁 언 겨울 새벽시장. 장거리를 거간꾼에 맡긴 사람이나 난전 자리를 미리 잡아 놓은 사람들이 아직 전을 펴기에도 장돌림을 하기에도 이른 시각, 언 손도 녹이고 빈속도 데울 겸 시락국집에 모여든다.

토장을 듬뿍 풀고 맵싸한 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시락국이 콧구멍을 들쑤시고 뱃속을 요동치게 한다. 마른멸치 한 웅큼 넣고 돼지 정강이뼈라도 한 토막 우려낸다면 감칠맛이다. 반찬이라야 무청이 강아지꼬리처럼 길게 달린 총각김치가 따라 나올 뿐이다.

저마다 새벽길을 재우쳐 오느라 빈속이 헛헛할 것이다. 반으로 토막을 낸 드럼통에는 장작불이 활활 탄다. 비좁은 틈새를 비집고 곱은 손부터 먼저 녹인다. 앉을 자리는 벌써 다 차버렸다. 그 역시 드럼통으로 만든 탁자에는 먼저 시락국을 받아든 몇 사람이 콧물을 훌쩍이며 뜨거운 국물을 훌훌 들이마시고 있다. 거기에 막걸리 한 사발 얹으면 더 덮을게 없다.

국물을 몇 모금 후룩이고 나서야 손바닥에 땀이 돌고 굽은 허리가 바로 펴진다. 이제야 옆 사람이 보인다고 고춧가루 낀 잇몸을 드러내고 아는 사람끼리 마주보고 웃는다.

가진 사람들이야 거들떠 보겠냐마는, 그래도 우연찮게 시락국을 만나면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몸속에도 시래기 맛을 읽어내는 DNA가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까지 연줄을 댄다면 시락국, 시락나물, 시락죽을 수 없이 먹었을 테니까.

우리가 이렇듯 시래기에 끌리는 것은 바로 거기에 고향 냄새가 있고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맛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어쩌다 수더분하고 만만한 식당에 가면 시래기 반찬을 만난다. 시래기를 넣은 고등어조림이나 생된장을 넣어 막 주물러 나온 시래기나물이면 그냥 반갑다. 주방에다 대고 목청껏 더 청하는 사람도 진즉부터 아는 사람처럼 낯이 익다.

푸른 잎은 모조리 벗기고 노란 알속만 챙겨가는 김장배추를 보면 겉잎은 어쨌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시래기가 쓰레기라는 말과 비슷해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우거지란 말을 많이 쓴다. 그래도 토속말의 정서는 아무래도 시래기에 있는 것 같다.

시래기 하면 어쩐지 슬프고 아린 느낌이 가슴 밑바닥을 싸하게 울린다. 김장채소를 거두고 난 빈 밭에서 시래기를 줍던 부르트고 언 손등이 생각나서일까. 아니면 시래기로 연명하던 가난한 민초들의 한 토막 지난 역사가 스쳐서일까.

지난겨울 채소전에는 시래기가 되지 못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시래기가 되지 못한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시래기는 우리의 추억을 살렸는데, 쓰레기는 무엇을 살렸을까. 아니 어디서 무엇과 함께 썩고 있을까.

세상살이에서 버리는 것이 많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이상규 1969년 6월 백마부대로 참전한 월남전참전유공자이며, 1991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응달동네’ 등 시집 4권을 펴냈다. 현재 경남 함안에서 ‘시 읽는 마을’ 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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