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드나드는 문에도 우리 조상들은 지혜를 숨겨 놓았다.

한옥의 대문은 밖에서 밀어 안으로 열리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방문은 안에서 밀어 열리도록 대문과 반대방향이다. 측간과 헛간도 마찬가지이다. 왜 유독 대문만 안으로 열리도록 했을까?

손님과 복(福)은 집안으로 맞아들이고 이 복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했다니 조상들의 톡톡 튀는 지혜가 엿보인다.

세종 때의 명신 조말생의 고손자인 조사수는 청백리였다. 언젠가 중종은 만조백관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청문(淸門), 예문(例門), 탁문(濁門)의 문을 셋으로 나눠 세우고 청백리를 뽑는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가장 깨끗하고 청렴한 사람은 청문(淸門)으로 들어가고, 보통이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예문(例門)으로, 청백리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탁문(濁門)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모든 관리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당당이 청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으니 바로 조사수였다. 그가 아무 거리낌 없이 청문으로 들어갔으나 그 누구도 조사수의 이런 행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니 자타가 공인하는 청백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런 행사를 우리 모두에게 해본다면 과연 우리들은 어느 문으로 들어갈지 망설여진다. 아무튼 우리 조상들의 깜짝 놀랄만한 지혜와 멋 때문에 작은 문(門) 하나라도 소홀히 여겨지지 않나 보다.

가‘닫고 싶은 문이 있다면 지옥의 문이다’는 ‘팔만대장경’의 이 구절 역시 그래도 먼저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연민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어서 오십시오. 문이 닫혀있는 것은 순전히 실내온도 조정상의 이유뿐입니다.’

미국의 ‘조지 도킹’이 캔자스 주지사로 있을 때 그의 사무실 문 앞에 걸었던 팻말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그토록 부족하다는 소통(疏通)과 열린 마음의 자상한 표현이 이토록 아쉬운 요즈음이다.

‘오늘밤 나의 마음은 나그네와 친척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나는 사랑이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을 막지 않겠다’는 ‘위긴’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생각나는 이 시간에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인 1952년 1월 6일 프랑스의 국립묘지인 팡테옹 문 위에는 ‘이 위대한 분들에게 국가는 명예를 바칩니다’라는 글귀가 씌어있었고 파리 시내 모든 성당에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점자를 만든 ‘루이 브라이’의 운구행렬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세 살 때 실명으로 자신도 앞을 못 보면서도 더 불편한 사람들을 위하여 점자라는 문(門)을 집념과 인내로 열었던 그였기에 프랑스대통령과 ‘헬렌켈러’도 운구행렬을 따라 그토록 애도했는지도 모른다.

찾아온 손님과 복(福)을 맞이하고 들어온 복은 놓치지 않으려는 대문과, 청백리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청문(淸門)은 물론 자신도 맹인이면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점자의 문을 활짝 열었던 ‘루이 브라이’의 인고의 사연을 품은 이 모든 문(門)들의 속내는 겨자씨만한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끝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정감(情感)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생각하면서 행여 누군가에겐 닫혀있을지도 모르는 마음의 문을 조용히 두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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