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떡국을 먹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2월 4일이 벌써 입춘이란다. 바깥은 겨울인데 달력과 우리들 마음속엔 벌써 봄이 와 있나보다. 성급한 봄을 찾느라 달력을 들여다보니 28일 밖에 없는 2월이 안쓰러운 지 유난히도 가슴 훈훈한 사연들이 눈길을 끈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음력으로 2월 초하루가 ‘머슴의 날’이란다. 양반집에서 노비에게 맛있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온종일 즐기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 동안의 수고를 위로도 하고 내일부터 봄 채비와 농사준비를 열심히 하자는 주인의 속 깊은 배려가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날을 중화절(中和節)이라 하여 정조(正祖)임금은 식물의 성장을 점검하는 도구인 중화척(中和尺)을 나누어주며 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서 중화(中和)란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날을 의미하며, 정조는 이 중화척을 나누어주며 ‘이것은 신하들에 대한 국왕의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니 그대들은 성심껏 나를 도와 달라’는 시까지 지었다고 하니 백성사랑의 훈훈함이 아직까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어느 추운 겨울날, 멀리 프랑스의 2월, 홀로 강변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화가가 있었다.

“자네는 생활이 어려운데도 항상 그림은 밝게 그리네 그려?” 반가운 인사 반 의아함 반으로 친구가 묻자, “언제 왔나, 그건 말이지, 그림만이라도 아름답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네. 그림까지 칙칙하고 우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더랍니다.

이 화가가 바로 그 유명한 ‘색채의 마술사’라는 프랑스의 ‘르누아르’였다.

낙락장송(落落長松)도 근본은 종자(種子)요, 쉰 길 나무도 베면 끝이 있는 것처럼, 1월을 채 느끼기도 전에 벌써 2월이라니. ‘시작이 반’이라는 이 말이 이처럼 실감날 수가 없다.

윤년이 아니라 2월이 28일밖에 없어 안쓰러운 나머지 마음 훈훈한 사연들이 2월의 달력을 대신 채우고 있는 반면에 안타까운 2월의 사연도 있다.

1945년 그러니까 72년 전 일본 규슈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2월 16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서시(序詩)의 윤동주선생은 그래서 더 안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처럼, 겨울밤 추위와 긴 밤의 고독이 아무리 매섭다 한들 우리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헤아리며 가슴 속의 온기를 모두 함께 나누고 싶은 2월이다. 양반과 하인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정과 존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머슴의 날이나, 물질적으론 가난하지만 정신적인 마음만은 항상 부자였던 ‘르누아르’의 애잔한 속내를 이제 서야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소동파의 말처럼,

‘우리들이 그 여산 (廬山) 안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이 여산의(廬山) 진면목을 알지 못했다’는 이치와 어쩌면 같은 지도 모르겠다.

일 년 열두 달 많은 정보와 은혜와 도움을 받고서도 그저 달력이기 때문에, 24절기와 지인들과의 수많은 약속 그리고 가족기념일만은 잊지 않고 열심히 챙기다 보니 행여 숨겨진 방점(傍點)들과 마음이 따뜻하며 가슴 아린 사연들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늦게나마 뒤돌아보는 그런 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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