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대(腹帶)는 허리 수술을 하였거나 부실한 척추를 받쳐주기 위해 허리에 두르는 넓적한 띠를 말한다. 때로는 노인들의 허리에 둘러져 허약한 상반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도 그런 복대를 두르고 사셨다. 어느 날 가실 데가 있다며 채비를 하시는데 배 안쪽에 접어서 돌돌 말은 수건을 덧대고 복대를 두르신다. 야윈 체격의 어머니는 뱃집이 없어서 자꾸 앞으로 숙여지기 때문에 그걸 복대 안쪽에 대고 두르면 그나마 힘이 되는 모양이다.

복대 안쪽에 감춰진, 어머니의 뱃집을 대신하는 그 수건의 소용을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꼿꼿하던 허리가 점점 기역자로 굽어지는 것을 나이 들어 그러려니 하고 예사로 보아 왔는데. 그것이 다만 비워진 뱃집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가진 재산도 수단도 없이 그저 억척같이 일하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한 평생을 다 보냈다. 일제식민시대를 거쳐 해방과 6·25 피란 등 많은 풍상을 겪으면서 워낙 강단이 배인 세대여서 다행스레 자식들은 어긋나지 않아 밥은 먹고 살도록 기초를 닦아 주었다.

객지 나가 공부하는 손자 손녀들 따라가 뒷바라지도 해주고 무언가 자기 몫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어느 듯 손주들도 다 자라 제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나자 역할도 없어지고 뱃집이 자꾸만 허해졌다. 손에 일을 쥐고 있어야할 텐데 그게 사라진 것이다. 자식들이 기껏 할 수 있는 말은 이제 좀 편히 쉬시란 말 뿐이다.

움켜쥐고 있을 곳간 열쇠도, 불을 땔 부엌도, 김을 뿜어 올리던 무쇠 솥도 없어졌다. 무명베를 마름질해 밤새우던 바느질거리도 없어지고 빨래터에 이고 갈 빨래감도 세탁기에 빼앗겼다. 들일을 거들고 싶어도 이마저도 요란스런 기계소리가 가까이 오지 말란다. 세상은 어느새 딴 천지가 되어 버렸고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눈길 마주치는 사람도 없으니 다만 양지쪽 담벼락에 기대어 오가는 사람들만 바라다볼 뿐이다. 전통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핵가족화로 다층가정은 이렇게 급속히 해체되었다. 선진국의 사회학자도 부러워하였다는 한국의 대가족제도는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고 노인들만 따로 동그마니 남은 것이다.

 

“매미껍질 같이 가벼운 어머니는/ 뱃집이 없어 자꾸만 앞으로 숙여진다/ 평생을 저울에 단 듯한 작은 밥공기/ 강단 하나로 꼿꼿하게 살아 왔는데/ 그동안 배를 채운 것은 허기였을까/ 이제는 그마저 빠져나가/ 여든네 해를 비워서 접힌 뱃구레에/ 수건을 돌돌 말아 뱃집을 만들고/ 복대를 둘러 삭신을 지탱한다/ 자식도 채워주지 못하는 빈속을/ 대신 채워주고 받쳐주는/ 나를 휘청거리게 하는 어머니의 복대”(졸시 ‘복대’ 전문)

지난 십 수 년, 뱃집이 없어 자꾸만 앞으로 숙여지던 어머니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아흔다섯에 돌아가셨다. 추석 대목 밑이라 부고를 내지 않았다. “내가 죽거들랑 씰데 없이 넘한테 기별하지 말거라”고 평소 하시던 말씀도 있었다. 일제에 징용 갔다 돌아와 4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60년 만에 합장(合葬)을 했다.

이제 어머니는 허리를 펴셨을까.

이상규 1969년 6월 백마부대로 참전한 월남전참전유공자이며, 1991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응달동네’ 등 시집 4권을 펴냈다. 현재 경남 함안에서 ‘시 읽는 마을’ 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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