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도록 살아오면서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백세시대라 일흔은 어쩌면 청년기를 갓 지난 황금기라고도 하지만, 우리 세대는 참 어렵게들 인생 고비들을 살아와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은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보호와 사랑을 많이 받았고, 막내다 보니 오빠 언니의 사랑도 남다르게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십대 때는 자주 병치레한 것 말고는 고민도 걱정도 모르고 살았다. 이십대,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그리움을 배웠다. 보고 싶은 사람 못 만나서 아쉽고, 그 아쉬움은 목마름을 더해 주었다.

이십대 후반을 들면서 결혼을 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 낯선 곳 떠돌면서 삼십대에는 기다림을 배웠다. 하루해가 길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고, 아침에 나간 한 사람을 종일 기다리며 목이 길어졌다.

기다림에 익숙해질 만도 한 삼십대 후반, 비교적 일찍 건강 때문에 예편한 남편이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에 직업의 일선에 뛰어들었다.

살림도 서툴던 막내가 처음 접하는 사회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저할 겨를도 없었고 약속된 것도 없었다.

마흔은 벌판이었다. 그 와중에 욕심을 부려 첫 시조집 ‘말없는 시인의 나라’를 묶었다. 스무 해 동안 써 모은 분신들이었다. 다행히 첫 작품집의 반응이 괜찮아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마흔 벌판을 지나 오십 계곡에 들어섰다. 힘겨운 오십 계곡에서 외손주를 만나는 행운은 싱그러운 위안이었다.

누군가 돈 걱정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했던가. 가난은 생활에 여유를 주지 않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했고 앞만 보고 가게 해주었다. 그때 두 번째 시조집 ‘산빛 물빛 다 흔들고’를 묶었다. 관심과 이목에는 욕심 없이 중간 정리라고 생각했다.

오십 계곡을 빠져나오니 예순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의 정점(?) 같아서 세 번째 시조집 ‘신의 섬으로 가서’를 엮으며, ‘세월이 아무렇게나 무작정 가지 않고 때 맞춰 마련하는 기미를 느끼면서 한마음 보태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들썩인다’는 ‘봄기운’에 이끌렸다.

그동안 아이들은 부모 욕심만큼은 아니어도 자기들의 그릇만큼은 커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예순 고개가 벅찼던가 건강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병원출입이 잦아졌다.

돌이켜보니 내게서 종교는 울타리였고 문학은 텃밭이었다. 생활을 심고 가꾸며 이제 일흔 오솔길에 들어선 것 같다. 사는 게 바빠서 많이 못 보고 많이 못 듣고 많이 즐기지 못했지만 이제는 오솔길 쉬엄쉬엄 걷는 여유를 갖는다.

살아온 날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 남았다. 다시 돌이켜 보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고맙고 주변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지는 오늘이다.

* 정표년 시조시인. 보훈병원에 입원 중인 남편(파월 맹호부대 소총소대장으로 참전)을 간호하고 있으며, 1990년부터 3권의 시조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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