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국가유공자의 긍지를 갖고 살아오면서 요령껏 살지 않았고,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 아니고는 억지 부려가며 행동하는 짓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성격 탓에 책임질 말이 아니면 말(言)을 갈아 탈 줄 모르고, 한번 맺은 인연은 굳이 멀리 하지 않아왔다.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확실하게 믿으면 다 내주는 순진한 속성으로 언제나 손을 맞잡고 같이 울어주는 게 탈이라면 탈이랄까.

역설적인 생각이지만 돌이켜 보면 가끔 필자가 장애인이 된 것이 감사할 때가 있다. 장애를 입은 것이 절대 감사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느 장애인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모두 내 친구요, 사랑을 나누며 함께해야 할 공동운명체의 한 식구이기 때문이다.

옛날 일이지만 내게는 살아오면서 상사들이 필자와 같이 근무하기를 원해서 행복했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봉급이나 수당을 더 주는 것은 아니지만 선배들이 진심으로 나를 끌어주고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일하게 해 기쁨으로 충성했던 소중한 기억이 생각난다.

요즘도 가끔 힘들고 어려울 때면 그 옛날 모시던 상관이 유난히 더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 중 한분. 그는 공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에게 지(智)와 덕(德)과 용(勇)을 가르친 올곧은 교육자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생각하면 그분은 지금도 내게는 살아계신 것처럼 가슴에 별 하나로 빛나고 있다.

중도장애인(후천장애인)으로 23년의 세월을 살고 보니 나도 어느새 아쉬움 속에 칠순이 지난 나이가 됐다. 인생은 한번 흘러가면 그만이기에 연습 삼아 살면 후회가 될 것 같아 여념 없이 일과 공부 속에서 살아왔다. 이젠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제2의 인생을 산다는 마음으로 장애인을 위해 일하다가 힘들어도 그것이 절대자의 뜻이거니 생각하며 힘든 줄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그 길은 바로 피안의 길이었다.

중도장애인이 장애를 이겨내기까지는 사람과 장애 정도에 따라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장애의 충격을 이겨내기까지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내다볼 정도로 내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장애인이면 누구나 한번 정도 홍역처럼 겪는 일이다. 지나고 보니 우울증과 같은 고통과 번뇌로 괴로워할 때, 우리 곁에 진정한 스승이 계셨다면 나 자신의 아픔을 쉽게 풀어가며 상처를 덜 받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가시나무새는 평생을 통해 한번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것이 노래인지 피맺힌 통곡인지 아무도 확인할 수 없으나 가시나무새는 ‘나 자신’을 버리고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나무를 찾아 몸을 던져 단 한 번의 황홀한 노래와 맞바꾼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것은 훌륭한 고통을 치러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결코 우리 자신들의 삶과 나눌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이제 2016년의 마지막 12월 끝자락이다. 병신년(丙申年) 한 달을 남겨 놓고 우리는 거둘 것보다 버릴 것들이 너무 많다. 우리 모두는 이제 서로를 향해 굳게 닫힌 마음 문을 열고 고해성사를 통해 한 해 동안 가슴속을 누르고 있던 마음의 병을 치유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태어나 새해를 맞아야 한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