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가급적 사람 만나기를 피한다. 사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 귀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귀로 남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해서 낭패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전과는 달리 나는 아내를 수시로 찾는다. 그녀 말은 무엇이든 귀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질 때도 있다.

그러나 말하는 그녀의 입만 주목하면 그녀의 말뜻을 알아채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50여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오늘 새벽 산책도 그녀와 동반이다. 땅만 보고 걷는 나에게 그녀는 쉬지 않고 무엇인가 계속 중얼거린다. 조간신문을 보다 생각난 것이라며 며칠 전 마을봉사활동 중 만났던 한 실업자얘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나이가 60대 초반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행색도 초라했지만 옷과 몸에서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났어요. 상담을 나누는 동안 코끝으로 스며드는 냄새가 하도 역겨워서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였죠. 한손으로 코를 살짝 가리자 제 마음을 눈치 챘는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라구요.”

“노숙을 하다 보니 옷도 빨아 입지 못하고 몸도 씻을 새가 없잖아요. 그러니 고약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죠. 그러나 사실을 말씀드리면 이 냄새가 요즘의 저를 살려주고 있어요. 냄새가 안 나면 노숙자들이 한패에 넣어 주지를 않아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가 그나마 한패로 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소 역겹기는 하지만 냄새가 나는 쪽이 그래도 하루하루를 편하게 살아가는 방편이 되겠죠.”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느라 잠깐 멈췄던 그녀 말이 이어진다.

“조간신문은 언제나 똑같아요. 미담가화는 하나도 없고 갈등과 증오, 착취와 핍박, 책략과 사기 등 끔직한 기사만 가득하죠. 그리고 기사 행간에서 저는 그 상담자에게서 풍겨왔던 똑같은 냄새를 맡을 수 있었어요. 그 냄새의 역겨움은 그 분의 몸 냄새보다 더 고약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신문을 접는 순간 저는 다시 한 번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어요. 그것은 바로 당신과 저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었어요.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세상을 살고 있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몸 냄새 아니겠어요? 하나 같이 우리의 닮은꼴이고 위선자들인 사람들 말이에요. 우리 역시 그런 형제자매들로부터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몸 씻기를 게을리 하거나 어쩌면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내의 속삭임은 그 뒤로도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남의 냄새를 혐오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 그러다 하나가 되는 것.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남인가, 애초부터 그 구분을 하기가 곤란한 것은 아니었던가.

아내는 그렇게 요즘 나의 교사가 되고 있다. 그 수다가 내 생각을 일깨우는 ‘철학자의 등에’가 되고 있다.

박진 월남전참전유공자, 주요 통신사 기자 등으로 활동, 현재는 일산에서 회고록 등을 집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