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세대에게 놀이란 둥근 통나무를 바퀴모양으로 잘라 네 바퀴 수레처럼 만들어 친구들과 동네 야산에서 쏜살같이 타고 내려가며 스릴을 느끼는 것과 굴렁쇠를 굴리는 것 정도였다.

‘바퀴’는 우리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주어왔다. 바퀴가 우리 인류사에 언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 고대전쟁에서 승패를 바꿔버린 트로이전쟁도 목마를 이용해 적의 심장부 깊숙이 밀고 들어간 후 적을 무찌른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벤허’에서 바퀴달린 전차가 박진감 넘치게 달리는 장면은 누구에게나 남아있는 명장면이다.

바퀴는 속도를 높이고 많은 짐을 운송하는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인 도구이다. 많은 시골 동네 우물에는 도르레가 있어서 무거운 물통을 쉽게 올릴 수 있었다. 요즘 고층 빌딩 어디에서 설치돼 있는 승강기도 도르레를 이용해 수십 층을 빠르게 오르내릴 수 있다.

앞으로도 바퀴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바퀴는 혁명이다. 여러 개를 연결하면 엄청난 수송도 가능해진다. 19세기 증기기관차가 등장하면서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도 한 차원 높은 바퀴의 위력인 셈이다. 요즘은 옛 서커스단에서나 쓰던 외발 이동수단도 거리에서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옛날 동네에는 몇 대 안되는 자전거가 집에 있어서 10살 즈음에 형과 함께 자전거를 배운 추억이 있다. 그 때는 두 바퀴로 가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워 자갈길에서 참으로 많이 넘어졌다. 자전거가 익숙해지고는 초록 물결의 청보리 사이를 시원하게 달리며, 익은 곡식을 쪼아 먹는 새떼를 쫓아내기도 했다.

자전거는 낭만으로 가는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는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15년 전 제주를 찾아 해안선을 따라 길게 펼쳐진 도로를 따라 힘차게 페달을 밟았던 기억이 있다. 파란하늘과 확 트인 수평선 다소 단조로워질 때면 도로가에서 새로운 볼거리들이 우리를 맞았다. 이중섭미술관, 제주민속촌, 이름 모를 박물관들. 쉬면서 달리면서 식견도 넓히는 여행이야말로 자전거 여행의 최고의 묘미이다.

5년 전엔 전국의 대표적인 강들의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면서 한강부터 섬진강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한강의 중후한 물줄기는 위압적이었다. 금강의 공산성과 부여의 낙화암도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였다. 섬진강은 3월 말 경에 벚꽃이 만개해 반가움이 더욱 클 것이다. 4월과 5월엔 금강과 영산강의 강변으로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 장관을 이룰 것이다. 자연은 또 이렇게 인간에게 무한한 감동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여행길, 꽃은 적당히 관조하고 앞을 잘 보고 가야 한다. 더러는 길이 끊기거나 패인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며 생각한다. 오래 살았다고 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잊고 있었던 것, 자연이 일깨워준다는 것을.

구르는 바퀴는 녹이 슬지 않는다. 닳을 뿐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산천을 내가 좋아하는 바퀴와 함께 천천히 즐기려 한다.

최솔 최현배 선생의 시한 수로 함께 이 봄을 지나며.

강물이 아름아름 끝난 데를 모르겠고

버들가지 출렁출렁 물속까지 드리웠다.

이내 한 길고 또 길어 그칠 줄이 없어라.

- 최현배, ‘나라사랑의 길’ 머리말 시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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