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서너 번씩 재난문자가 화면에 뜨고,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강동구만이 아니라 인근 송파구, 강남구와 광진구, 경기도 하남시, 남양주시까지 관련 확진자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문자가 울린다.오늘도 스마트폰으로 세계와 연결되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며, 라이브 채널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20여 년 전 경부선 열차 안에서의 휴대폰에 얽힌 기억이 떠오른다.통신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와 일행은 부산 출장을 마치고 새마을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동대구를 지나 김천역에 닿을 때 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25일, 국가보훈의 새로운 정책 브랜드인 ‘든든한 보훈’을 발표했다.든든한 보훈의 ‘든든하다’는 기본적으로 다의어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의미는 ‘어떤 것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이 허전하거나 두렵지 않고 굳세다’이다. 더 간단하게 ‘든든하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신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든든한 보훈이라는 새 정책 브랜드에는 신뢰할 수 있는 보훈정책을 펼쳐 나가겠다는 국가보훈처의 비전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기본적으로 모든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보훈은
6월이 되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 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국가를 보위하고자 순국하셨던 분들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한평생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서 헌신했던 백범 김구는 “사람은 집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나라를 잃고서는 살 수가 없다”고 역설하였고,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가난해도 살 수 있고, 머슴으로도 살 수 있지만, 나라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유관순열사는 일제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항거하다가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 뿐인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라며 순국하였고,
어느새 벚꽃이 피었다가 금세 지고 있다. 꽃피는 4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이 비상인 이 시국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바라보기만 해도 기운이 샘솟는 꽃 피는 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는 사이 봄의 한 가운데 도달했다.공무원이 된 지 올해로 2년차. 2년 전 보훈처에 들어오면서 나라를 지킨 분들을 위해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지금도 그 자부심을 놓치지 않고 각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 민원을 상담하고, 접수해드리는 이동보훈팀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이동보훈팀의 업무는 주로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보훈관서와
지난 12여년 동안 경남동부보훈지청에서 보훈섬김이로 일하며 고령·독거 유공자 어르신들을 돌봐왔다. 오늘은 인연이 닿았던 분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한 분과 얽힌 추억을 회상해 본다.경남 김해시에 거주하던 한 어르신이다. 그분 덕분에 이곳저곳을 참 많이도 뛰어다녔다. 그분을 돌보는 과정에 때론 서운한 마음이 들어 혼자 많이 울기도 했지만 보훈섬김이로서 더 큰 보람을 안겨주신 분이기도 하다.어르신이 혼자 사시는 댁을 처음 방문하던 날이었다. 걸레로 얼마나 닦았는지 장판에 무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청결함으로 강렬한
사라진 광복군 훈련비 확인충칭임정청사 감동의 ‘인증’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1주일 동안 독립유공자 후손과 일반 시민, 학생 등 총 33명이 청년 광복군들이 걸었던 6,000리길 대장정을 다녀왔다.행사이름은 ‘청년 광복군 6,000리 대장정’. 주요 이동 루트는 조선인 학도병들이 중국 강소성 쉬저우에 있었던 일본부대를 탈출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던 충칭에 도착하기까지의 길이었다.인천공항과 상하이 푸둥공항을 거
기미년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이 저물어 간다. 3·1혁명에 나섰던 선열들과 임시정부와 의병·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선대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고 태평양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 유교문화권 대 기독교문화권, 자본주의세력 대 공산주의세력의 대척지대가 되었다. 그래서 늘 주변 열강으로부터 침략과 분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최근 북핵과 미사일 발사로 조성된 한반도 위기상황은 역대급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오래된 현재성’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
보훈복지사로 일하면서 많은 유공자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다양한 어르신들의 인생이야기를 듣게 된다.노인성 질환으로 걸음을 절뚝이며 한사코 서비스를 받는 것이 국가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며 거절하시는 어르신.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한 평생을 다 보내고 이제는 쇠약해진 작은 몸을 한쪽 방구석에 기대어 세월에 대한 한탄과 서러움을 조곤조곤 이야기하시던 할머님.또 당신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전화도 하지 않아 왜 그러시는지 여쭤보니, 아프다고 하면 더 안 올까봐 그렇단 말씀하시는 모습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재가복
벌써 무더위가 코앞으로 다가온 듯하다. 아침저녁으로 아직 선선한 기운이 남아있지만 한낮이 되면 작년에 맹위를 떨쳤던 무더위가 올해도 반복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될 정도로 후덥지근한 더위를 느낀다. 바짝 다가온 무더위는 작년 폭염에 만났던 한 할아버지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든다.복지업무를 맡고 처음 맞이한 작년 여름은 20여년만의 폭염으로 서울북부보훈지청에서는 고령의 재가복지대상자들을 방문해 폭염대비 요령과 건강관리 유의사항 등을 안내하고, 지역사회의 후원으로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신 분들께는 선풍기와 쿨매트 등을 지급했다.그러던 중 성
2017년 3월 충남동부보훈지청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개청됐다. 꽃샘추위로 쌀쌀한 3월의 날씨에도 전국 여러 곳에서 모인 직원들은 낯선 환경에도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일을 시작했다.복지팀에 소속됐기에 연고도 없는 상황에서 여러 복지재단, 자원봉사센터, 대학교 등을 찾아가서 보훈지원제도를 설명하고 보훈가족을 위해 협조를 요청드렸다. 그러나 지청이 신설 됐다고 해서 갑작스런 변화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그러던 중 2017년 5월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따뜻한 보훈’
국군장병들과 함께 임시정부 4,000km 답사를 다녀왔다.전국 각지에서 모범적으로 근무하고 있는 국군장병들과 함께 한 ‘임시정부의 주요거점을 따라 선열의 숨결을 느끼는 4박 5일간의 여정’. 짧은 시간이었지만 독립운동이라는 뜨거웠던 과거와 오늘의 호국 현장을 지키는 젊은이들의 만남은 신선한 조합이었다.*상하이, 그리고 윤봉길 의사5월 13일 첫날, 도착한 곳은 임시정부가 처음 세워진 상하이였다. 2015년 상하이시와 독립기념관이 협력하여 전시관을 재개관해서인지 당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윤봉길 의사의
저는 지난해 12월부터 경기북부보훈지청 보훈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새내기 복지사입니다.민간에서 일했던 5년 여의 제도와 비교하면서 ‘국가에서 국가유공자의 노후를 위해 이렇게 지원을 하는구나’하며 놀랍고 한편으로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장기요양보험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보훈대상자의 가정을 찾아가 주 1~3회, 2~6시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보훈대상자 상태변화로 더 많은 서비스를 필요로 할 때 다른 복지서비스로의 연계를 해주는 보훈재가복지서비스는 일반 요양보호서비스와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제도입니다.특히 이곳 경
대전지방보훈청은 관내의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보훈가족 한 분 한 분을 찾아내 지원해드릴 수 있도록 2016년부터 ‘마음똑똑방문단’ 운영을 통해 생활이 어려운 보훈가족에 대한 복지실태조사를 실시해왔다.마음똑똑방문단으로 조사를 나갈 때면 연탄 값이 아까워 연탄을 많이 때지 못한다, 몸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집에서 밥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어제 일도 자꾸 깜빡깜빡해서 치매가 걱정된다는 등 보훈가족들이 어떤 점을 가장 힘들어하시는지 현장에서 직접 듣게 된다. 이 현장감으로 우리는 어르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드리기 위한 맞춤형 복지 프
국가유공자에 대한 맞춤형 재가복지서비스인 보비스 사업은 고령, 질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불편함을 겪고 있으나 가족으로부터 적절한 수발을 받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서비스다. 이분들께는 보훈섬김이를 파견해 가사·편의·정서 지원, 건강관리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고 있다.국가보훈처가 이 사업을 처음 추진하게 된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하신 국가유공자분들이 점차 고령화되어 가고 있으나 그 가족들은 결혼, 직장 등의 이유로 부득이 흩어져 살게 됨에 따라 상이후유증이나 만성질환 등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보훈복지사로 첫 출근한 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슨 일을 했나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보훈청을 연결하는 일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보훈복지사라는 직업은 다리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복지대상자와 섬김이를 연결해주고 섬김이와 보훈기관을 연결하는 다리, 또한 대상자와 보훈기관을 연결하는 다리.현장에서 일하는 보훈섬김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속기관에 전달하는 역할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소속기관의 업무지시나 전달사항들을 섬김이에게 전하는 역할은 기본이다. 언제나 두 대상 사이에 있는 보훈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그리고 행복한 것을 꼽으라면 ‘나눔’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눔’이라는 것은 서로 간에 진실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고, 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도 더 행복하니까 말이지요.저와 저희 섬김이 선생님들은 각자 보훈청에 들어온 입사동기와 목적은 다르지만 ‘나눔’의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저는 보훈청에 들어와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대상자 선정을 위해 첫 방문을 하게 되면 사람이 그리운 어르신들은 그 짧은 시간에도 기나긴 인생여정을 압축해서 쏟아내시며 눈물을 보이시곤 합니다. 처음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
“딸 보다 나아요…딸 보다 좋아요…”보훈섬김이들에게 하는 재가복지대상자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말씀이다.한창 푸르렀던 날, 전장에서 불태웠던 젊은이들은 이제 늙고 힘없는 노인이 되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집에 홀로 앉아 흘러간 옛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시간을 보내시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분들에게 보훈섬김이들의 방문은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다.배우자와의 사별이 힘들어 우울한 날을 보내시던 국가유공자 어르신. 상담 내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한 달 전 배우자를 떠나보낸 사연을 말씀하시며 슬프게 우셨다.
아버님 계세요? 나는 큰소리로 음악과 흥이 넘치는 국가유공자 어르신 댁을 방문해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웃음과 함께 밝은 모습으로 나오시는 모습에 “아버님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하고 여쭤보니 “당연히 좋지. 오늘도 이렇게 예고 없이 보훈청에서 방문해 줬는데, 좋은 일이 또 생길 것 같아”하시며 웃는다.67년 전 6·25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지켰던 국가유공자분들이 이젠 평균 나이 88세의 고령이 됐다. 그러나 힘이 부치는 상황임에도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노인’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능동적으로 보탬과 기쁨을
1908년 5월 9일(음력 3월 24일) 오후 3시경. 조용하던 광주시 광산구 박산마을 일대에서는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난데없는 교전이 시작됐다. 기마대를 포함하여 일본 군경 4개 수색대로 구성된 제2특별순사대와 김태원 의진(義陣)간의 전투였다. 의병들과 일군간의 전투는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지금으로 치자면 M1소총처럼 6번을 장전하여 사격할 수 있고 사거리도 250m에서 300m나 되는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경과, 한 사람이 화약을 장전하여 총을 들고 사격할 자세를 취하면 또 한 사람은 부싯돌로 심지에 불을 붙여야 했고,
따뜻한 보훈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훈가족 중심, 현장중심의 정책이다.서울지방보훈청은 따뜻한 보훈 시책에 맞춰 지난 가을부터 ‘보훈현장365팀’을 자체 운영하면서 거동이 불편하신 독거, 무의탁 가구 등 200여 가구를 추가로 발굴해 찾아가는 보훈서비스인 재가복지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촘촘한 복지네트워크를 추구하는 ‘나라사랑 행복협의체’, 섬김과 체감의 반찬서비스인 ‘나라사랑 행복식탁’, 쾌적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인 ‘나라사랑 행복하우스’, 사회저명인사와 함께하는 ‘나라사랑 행복동행’, 지역사회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