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서너 번씩 재난문자가 화면에 뜨고,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강동구만이 아니라 인근 송파구, 강남구와 광진구, 경기도 하남시, 남양주시까지 관련 확진자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문자가 울린다.

오늘도 스마트폰으로 세계와 연결되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며, 라이브 채널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20여 년 전 경부선 열차 안에서의 휴대폰에 얽힌 기억이 떠오른다.

통신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와 일행은 부산 출장을 마치고 새마을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동대구를 지나 김천역에 닿을 때 쯤 중년의 남자가 열차 통로를 지나가며 소리 높이 외쳤다. “휴대전화 가지신 분 계십니까?”

아마도 이 열차 안에는 휴대폰을 가진 승객이 없는 모양이다. 가방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벽돌만한 크기의 무겁고 긴 제품이다. “저기요.” 좌석 사이 통로를 지나 출입문을 향하던 남자분이 뒤를 돌아본다. 남자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핸드폰을 받아들더니 빠른 걸음으로 문 쪽으로 사라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 남자분이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정말 고맙다고 거듭 말하며, 동대구역에서 내려 그곳에 대기하던 직원에게 중요한 서류를 전달해야 하는데 지나쳤다고 했다. 다행히도 휴대폰을 빌려준 덕분에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다.

내가 가방에서 꺼낸 핸드폰은 회사에서 부서장에게 지급된 통화시험용 핸드폰이었다. 차량전화가 들어오고, 휴대용 전화 서비스가 시작되는 초기 제품은 통화구간이 대도시와 고속도로, 철도를 따라 이루어졌고 통화품질도 그리 좋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시 부서장들의 핸드폰은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매월 통화구간과 통화품질을 체크해 회사에 제출하는, 말하자면 통화품질시험용이었다.

당시 전화 연락은 주로 무선호출기를 사용했는데, 호출기 화면에 뜨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거는 정도였다. 아까 그 남자분도 호출기로 호출을 했을 것이며, 호출을 받은 동대구역에서 기다리던 직원은 호출기 화면에 뜬 전화번호를 보고 가까운 공중전화박스를 찾아 가서 공중전화기로 달리는 열차에 있는 휴대폰에 통화를 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내게 준 그 통화시험용 제품이 오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당시에는 첨단 통화방식인 벽돌만한 휴대폰이 지금 생각해 보면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 후 휴대폰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와이셔츠 주머니에 들어가는 소형 휴대폰이 나오고 ‘언제 어디서나 터진다’는 슬로건을 내건 휴대폰이 나오더니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스마트폰이 전세계에 쓰이고 있다.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됐다.

요즘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스마트폰에 푹 빠져있다. 이제는 통화 불가능한 곳을 찾기가 더 힘들다. 스마트폰과 함께 생활하는 첨단과학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김차복 월남전참전유공자. 정보통신부와 통신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서울 명일동에 거주하며 시조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