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복지사로 일하면서 많은 유공자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다양한 어르신들의 인생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인성 질환으로 걸음을 절뚝이며 한사코 서비스를 받는 것이 국가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며 거절하시는 어르신.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한 평생을 다 보내고 이제는 쇠약해진 작은 몸을 한쪽 방구석에 기대어 세월에 대한 한탄과 서러움을 조곤조곤 이야기하시던 할머님.

또 당신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전화도 하지 않아 왜 그러시는지 여쭤보니, 아프다고 하면 더 안 올까봐 그렇단 말씀하시는 모습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재가복지서비스를 받는 보훈가족의 대부분은 80~9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다. 앓고 계신 지병도 많고 신체기능이 떨어지다 보니 타인과 만나서 대화할 일이 적고, 때로는 가족들에게서도 소외되는 외로운 분들이 많다. 때문에 매주 보훈섬김이가 방문해 가사일을 도와드리고 이야기도 나누며 여러 가지 일상생활을 도와드리고 있다.

보훈지청에서 보훈복지사로 근무한지 이제 5년차.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며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 가사도움이나 후원품 지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자기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온전히 이해받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무섭고 아팠던 전쟁의 기억, 위로받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들, 힘들게 살아온 인생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말이다.

한 어르신이 떠올랐다. 어린나이에 가족들과 헤어져 전쟁을 겪고 포로로 끌려 다니다 탈출한 할아버님이 그 이야기를 한 시간 넘도록 하시다가 당시의 감정이 북받쳤는지 한참을 엉엉 우시자 같이 눈물을 보이던 보훈섬김이 선생님. 어르신은 그렇게 실컷 우시고 속이 후련하다며 웃어 보이셨고, 섬김이 선생님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맘때면 재가서비스를 받다가 파킨슨병이 심해져 요양병원에 입원해 거동도 못하고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 어느 어르신이 생각난다. 어르신은 한사코 “집에 섬김이가 올텐데, 우리 섬김이가 올텐데…” 하며 집으로 가려고 하셨다.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이제껏 함께해 온 보훈섬김이의 존재가 어르신께는 그만큼 선명하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곳곳에서 돌봄이 필요한 재가복지대상자 어르신 700여 명을 위해 값진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경기남부보훈지청 복지팀의 60여 명의 보훈섬김이, 복지사, 보비스요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구민경 / 경기남부보훈지청 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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