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전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턴투워드부산 국제추모식에서 축하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있는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행사 ‘턴투워드부산’(Turn Toward Busan)이 열리는 현장. 새벽에 도착해 올려다 본 부산하늘은 온통 구름이었다. 빗속에서 묵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바람은 차가웠고 공기는 축축했다.

유엔기념공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나라를 위해 몸 바친 유엔용사들을 깨끗한 하늘 아래서 추모하라는 뜻이라도 되는 양 주변이 거짓말처럼 밝아졌다. 부산을 덮고 있던 구름이 조금씩 조각나 행사 직전에는 사이사이로 짙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햇살이 내비쳤다.

턴투워드부산은 2007년 한국전 참전용사인 캐나다의 빈센트 커트니씨가 매년 한국시간 11월 11일 11시에 맞춰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유엔묘지를 향해 전 세계 참전용사들이 1분간 묵념의식을 갖고 그 정신을 추모하자는 취지로 제안해 시작됐다고 한다. 올해가 9번째.

올해의 경우는 추모식에 앞서 영국군 참전용사인 고(故) 로버트 맥코터씨의 유해 안장식이 진행돼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6·25에 참전해 낙동강방어선전투에서 활약한 맥코터씨는 종전 후 고국으로 돌아가 생활하다 한국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세상을 떠난 지 14년 만에 전투현장,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안장식은 맥코터씨의 아들부부와 딸, 동료 참전용사들이 자리를 함께해 맥코터씨가 전우들 옆에 영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들 게리 맥코터씨는 “아버지가 이곳에서 편안히 잠드시게 됐다.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해준 한국에 감사드리며, 아버지의 오랜 희망을 이룰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국에서 머나먼 타국으로 달려와 제 몸 아끼지 않고 대한민국을 지켜준 것도 감사한 일인데, 평생 우리나라를 잊지 못하고 사후에라도 돌아오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나는 내 아버지를 이역만리 먼 땅에 보내드릴 수 있었을까. 맥코터씨에게도, 큰 결심을 해준 아들 게리씨에게도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엄숙한 안장식이 끝나고 본 행사가 시작된 오전 11시 11분. 유엔군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사이렌이 울리고 행사에 참석한 어린 학생들부터 이제는 노병이 된 참전용사들 모두 함께 참전용사들을 위해 묵념했다.

국내 다른 지역에서도, 6·25전쟁에 참가한 21개국에서도 현지시각으로 11시에 맞춰 추모묵념이 이뤄지고 있으리라.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값진 희생을 추모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의 마음이 부산을 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추모행사를 마친 후 오후에는 부산시내에서 호국보훈퍼레이드가 벌어지며 추모 열기를 이어갔다. 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유엔군 참전용사를 포함한 2,500여 명이 부산 송상현광장에서 서면역을 거쳐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진행됐다.

부산의 빌딩숲 사이로 1km가 넘는 행렬이 줄지어 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호국보훈’이라는 같은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행사에 참여하는 내내 세계가 추모하는 슬픈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턴투워드부산’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인 추모행사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 게리 맥코터씨 <오른쪽 사진>

- 안장식을 마친 소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번 일(안장식)을 기대 못했는데 기쁘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자유를 위해 노력하셨는데, 종전 후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이 성장한 것이 매우 놀랍고 기쁘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유언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한국정부에 감사하다.

-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참전 당시 성주전투에서 많은 동료를 잃어 경북 성주에 묻히길 원하셨으나, 성주에선 마땅한 곳이 없었다. 유엔기념공원측에서 자리를 마련해줘 유언을 지킬 수 있었다.

- 지금 심경은

아버지가 평화롭게 안장됐다고 믿는다.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호균 국가보훈처 온라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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