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호근 청주대 정치학 교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고 카(E.H.Carr)는 묘사하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는 영광과 환희의 역사도 있고, 좌절과 질곡의 역사도 있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6·25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전쟁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의 시대라는 역사적 질곡을 겪고 난 후 또 다른 비탄과 좌절을 겪게 한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이다. 지나간 역사이지만 오늘에 되살려 볼 때 어쩌면 계 속되는 고통의 발원지가 되어 왔고, 그 아픔은 지금에까지도 커다란 상흔을 남기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는 남북 간의 기나긴 분단 체제를 고착화시켰고, 가족 간 생이별의 뼈아픈 고통을 강요하였다. 아직도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는 전쟁 세대이건, 전후 세대이건 한국인들의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아픔의 역사도 또 다른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듯 한국전쟁의 고통과 상처가 우리의 새살로 되살아날 수 있다.

“다음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조지프 던 포드, 윌리엄 고트니, 해리 해리스, 시어도어 마틴, 피터 로스컴, 마이크 코프만, 팀 핀첨, 브라이언 싱어, 피터 버그 등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선 조지프 던포드는 현 미국의 합창의장이고, 윌리엄 고트니는 미 북부군 사령관 겸 북미 항공우주군 사령관이다. 헤리 헤리스는 미 태평양군 사령관이며, 시어도 마틴은 주한미군 제2사단장이다. 또한 피터 로스컴은 공화당 소속의 미 연방 하원의원이며, 마이크 코프만은 민주당 소속의 미 연방 하원의원이다.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유주얼 서스펙트를 감독한 미국의 영화감독이며, 피터 버그는 배틀쉽, 핸콕 등을 만든 영화감독이다. 팀 핀첨은 지난 10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프레지던츠컵 대회를 주관하는 피지에이(PGA)투어 회장이다.

이들은 모두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군의 핵심 지휘부를 이루고 있는 주요 인사들, 미 정계의 주요 국회의원들,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장, 미국 골프계의 수장 등으로 그 화려한 면면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분들의 부친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들은 6·25 때 전투요원으로 참가했던 아버지로부터 전쟁의 무용담을 비롯해서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이다.

전쟁의 참상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직접 겪은 우여곡절의 한국에 관한 수많은 스토리들을 성장과정에서 접했을 것이다. 한국식으로 치면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 분들의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폐허가 된 상태로부터 국가적 재탄생이라고 부를 만큼의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던 전쟁의 참혹함과 상처로 얼룩진 변방의 이름도 낯선 나라에서 완전히 환골탈태한 새로운 나라로 등장하였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짐작하건 데 이분들의 마음속에 일찌감치 자리 잡았던 한국에 대한 ‘측은지심의 친근감’이 이제는 ‘또 다른 경의와 신기함’으로 혹은 매력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과 미국은 60여 년의 동맹관계를 이어왔다. 이제는 단순한 동맹관계를 뛰어넘어 포괄적 전략동맹, 신뢰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한 동맹관계의 저변에는 양국 국민의 공감은 물론 이와 같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영역의 주요 인사들 간의 인간적 유대와 마음의 교감이 동맹의 튼튼한 바탕으로 마련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거 북중동맹의 견고함은 소위 ‘혁명 1세대’로서 한국전쟁의 시종을 함께 했던 김일성, 마오쩌둥(毛澤東) 등 북중 수뇌부 간의 인간적 결속과 이른 바 ‘혈맹적 유대’가 중요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과 김정일 사후 북한의 내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친중 인사의 핵심으로 알려진 장성택의 처형 등이 겹치면서 작금의 북중 관계는 냉각기를 겪고 있다. 그러한 소원함의 이유가, 양측 파워 엘리트 간의 인적 유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냉철한 국익의 입장에서만 외교정책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북중 집권층 간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네트워크가 전무하다면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관계에서 국익에 따른 외교의 냉혹함만이 존재하게 된다.

영국 더 타임스지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앤드루 새먼은 과거 언론 기고문을 통해 ‘6·25’를 ‘한국의 보물’로 평가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프랑스 ‘노르망디’의 상징성을 후세의 중요한 유산으로 기렸던 것처럼 한국전쟁의 폐허를 새로운 창조의 시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한편의 중요한 부분은, 한국이 전쟁을 함께 했던 전우의 나라에게 ‘공감의 외교’를 펼칠 수 있는 중요한 터전을 마련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을 도왔던 나라들에게 ‘결초보은의 외교’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진심어린 마음을 담은 보훈을 통한 공공 외교를 수행하는 것이다.

어제의 한국전쟁의 고통이 오늘의 감사의 진심을 담은 ‘마음의 외교’를 펼칠 수 있게 해주는 튼튼한 바탕이 된다면 한국의 또 다른 소중한 보물단지이다. 이는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자산이다. 6·25전쟁이 오늘의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또 다른 선물이다. 이를 더욱 넓히고 다져야 한다. 보훈외교를 통한 외교의 또 다른 지평을 넓게 펼치고, 깊게 심화시켜야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한미동맹의 인적 인프라가 6·25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마련되었다는 역설이 오늘날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뿐만이 아니다. 콜롬비아 해군 사령관인 에르난도 벨레즈, ‘수퍼 내추럴’의 주연 배우인 영국의 마크 셰퍼드도 부친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 이들 이외에도 세계 각 지역의 참전국에 이러한 혈맹의 인적 저변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한국전쟁 시에 한국을 도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여러 다른 참전국과 참전 용사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과의 지속적인 국제교류협력체제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보훈’을 매개로 한 국제적 네트워크의 구축은 어떤 나라도 가지 못한 한국의 외교적 지평을 확장시키는 소프트 파워 외교의 ‘지속가능한’ 원천이 될 수 있다.

보훈외교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면, 이를 통한 외교의 또 다른 지평을 넓게 펼치고, 깊게 심화시켜야 한다.

 

유호근 청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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