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미술에 관심이 좀 있다 싶은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이름의 화가다. 그러나 그 이름은 우리 화단의 거목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다. 해방기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과 예술가의 사명을 붓으로 끌어안았던 화가 이쾌대(李快大, 1913~1965)가 그다.

광복 70년을 기념해 20세기 한국미술 대표화가 이쾌대의 회고전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전시중이다.

이쾌대가 남긴 그림들은 대략 1930년에서 1950년 무렵까지 20여년에 걸쳐 제작됐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 해방기 그리고 한국전쟁기로 한국 역사의 비극적 시대와 겹친다.

이쾌대는 바로 이 암울한 시대를 딛고 예술혼을 꽃피운 화가로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식민지 시대의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주제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확립했다.

이번 전시는 휘문고보부터 제국미술학교 재학시절인 학습기(1929~1937), 귀국 후 신미술가협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을 시도하는 모색기(1938~1944), 그리고 해방 이후 탁월한 역량을 기반으로 한국적인 리얼리즘 미술세계를 구현한 전성기(1945~1953)로 나누어 이쾌대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백남준과 함께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 그의 유명세가 작품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해방 후 월북작가라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탁월한 그림 실력과 독자적인 주제의식으로 한국 근대미술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으나 월북화가라는 이력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었다.

1929년에서 1937년. 휘문고보 졸업반이던 때 결혼한 이쾌대는 인물화에 관심이 많아 아내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아내의 초상화에서 시작한 여성인물화가 차츰 조선의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1938년에서 1944년. 화가로서 본격적인 첫발을 내딛는 시기에 그는 전통 복식의 표현과 색채의 조화를 깊게 고민하고 서양화에 전통 회화의 기법과 색채를 도입한 새로운 회화를 선보였다.

해방시기였던 1945년에서 1953년은 그의 전성기다. 해방 후 새로운 민족미술의 건설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일제의 잔재를 벗은 새로운 미술을 만드는 것에 몰두했다.

수십 명이 한데 엉켜 있는 ‘군상’은 이쾌대가 지금까지 쌓아 온 인물화 기량과 조형감각이 아낌없이 표출된 대표작.

11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서울, 시청역 1번 출구에서 도보 4분, 덕수궁 정문으로 입장)

▲ 군상1-해방고지, 1948년,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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