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대전에서 창설된 공군정찰비행대는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김천과 의성, 영천기지로 이동해 적정 정찰과 연락 임무를 수행하면서 한국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8월로 접어들며 포항과 영천지구에 대한 북한군의 공세가 더욱 강화됐다. L-4정찰비행부대 조종사로서 제2군단에 파견돼 있던 전구서 이등상사는 정찰작전을 수행하던 중 포항 기계 방면으로 침입하는 적 지상군 2개 대대를 발견하고 유엔공군의 F-51전투기로 유도해 적을 전멸시켰다. 긴박한 전세 속에 전구서 이등상사의 기민한 대응이 이룬 쾌거였다.
 
9월의 대대적인 적의 포위공격에 국군은 영천-포항 연결도로의 남쪽까지 밀리게 됐다. 전구서 이등상사는 L-4기를 몰고 영천부근 공중정찰을 실시하며 적의 이동방향과 공격방향 등을 탐지해 신속히 보고했다. 적의 지상포화를 무릅쓰고 목숨을 건 저공비행으로 얻어낸 그의 적정 정찰이 아군에게 불리하던 영천지구의 전황을 일거에 바꾸는 데 공헌했다.
 
1950년 10월 7일 그는 중부전선을 따라 북진하던 제6사단의 임무를 지원하며 관측비행을 수행하며 아군의 포격이 적진에 명중되도록 유도하던 중 화천상공에 쏟아지던 적의 대공포화에 피탄돼 산 중턱에 추락해 장렬히 산화했다. 뛰어난 조종 실력과 정찰 조종사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스스로 ‘군단의 눈’이라는 자부심을 지녔던 불굴의 보라매.
 
정부는 정찰기 조종사로서의 그의 전공을 높이 평가해 1계급 특진(공군소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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