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 선생은 평남 평원 출신으로 1908년 평양 대성학교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지도를 받던 중 신민회에 가입했다. 1910년 만주로 망명해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했고 1913년 만주 유하현 소재 일신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다.
 
1914년 신흥무관학교 경영에 참여하고 1919년 매국 7적 응징을 목적으로 27결사대를 조직해 격문을 배포했다.
 
1920년 7월 미국 의원단 내한 때 안경신 선생을 비롯한 3개 결사대를 국내로 파견해 평남도청을 폭파하는 등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1922년 상해 대한적십자사 감사로 선임됐고 같은 해 7월에는 국민대표준비회가 조직되자 서기로 임명돼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1926년 만주에서 민족유일당운동과 3부 통합운동에 참여했고 1927년 농민호조사발기에도 합류했다. 1929년 상해에서 한인학생의 중국군관학교에 입교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같은 해 4월 국내로 잠입해 평양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펼쳤다. 12월에는 임시의정원 만주·간도지방 대표로 선임됐다.
 
도산선생이 의(義)와 담(膽)을 가진 인물로 극찬할 정도로 선생은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을 다하다 1930년 상해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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