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열 수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무박 4일, 43시간의 숨 막혔던 협상이 드디어 타결됐다. 이로 인해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북한의 목함 지뢰 및 포격도발과 이에 대응한 우리 군의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와 응징 포사격으로 인해 발생한 한반도의 긴장이 일단 누그러지게 됐다.

6개항의 합의문에는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사실상의 재발방지를 위한 내용과 함께 남북한이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2년 반 동안 그리고 김정은 정권 3년 반 동안 계속됐던 남북한 간의 적대적 관계가 화해 및 협력의 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크게 4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신념에 찬 리더십 때문이었다. 평소부터 원칙을 자신의 철학으로 간주해 온 박대통령은 이번 협상 대표단에게도 이런 원칙을 강조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협상을 통해 보상하는 이런 악순환을 끊고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상을 전제로 협상을 해서는 안 되며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북한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으면 협상이 결렬되어도 괜찮다는 의지를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밝혔다.

그 결과 합의문 제2항에 ‘북한’이 사과한다는 ‘유감’이라는 단어가 명시됐다. 또한 제3항은 남북한 간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발생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는 내용으로써 사실상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항이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빚어낸 결과였다.

두 번째는 똘똘 뭉친 국민의 단결력 덕분이었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국군들이 탈영하고 시민들은 전쟁에 대비하여 사재기에 급급하다는 허위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허위선전에 국민들이 분개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북한에게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네티즌들은 동원에 대비하여 예비군복을 챙기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고 전쟁불사론까지 외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북한을 용서할 수 없으며 단단히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댓글들이 홍수를 이뤘다. 사실 그 동안 남북한 간에 충돌이 있으면 늘 남남갈등이 일어나거나 또는 정부를 못미더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국민들이 똘똘 뭉쳐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세 번째는 우리 군의 굳건한 전투준비태세 덕분이었다. 2010년 천안함이 폭침되고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포격 도발이 있은 후 해군과 해병대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우리 장병들은 ‘북한이 한번 만 더 도발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다. 이번에 목함 지뢰가 터져 2명의 부사관이 부상을 당했지만 이들은 두 다리가 절단된 상태에서도 “빨리 돌아가 부대원들과 합류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전역명령을 받은 70명에 가까운 병사들은 “부대원을 두고 홀로 전역할 수 없다”고 전역 연기 신청을 했다.

이런 장병들의 정신력에 힘입어 국방부는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라는 칼을 빼들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에도 머뭇머뭇하다가 결국 실행하지 못했던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던 것이다. 북한의 포격 도발에 대해 우리 군은 적 GP 부근에 29발의 포탄을 아주 정확하게 쏟아 부었다. 우리 군의 정확한 포사격은 북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포는 부정확하고 기동조차 어려운 고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서둘러 회담에 임할 수밖에 없었고 또 우리의 요구사항이 합의문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네 번째는 튼튼한 한미동맹의 힘이었다.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고 한다. 중국은 중립을 지켰지만 미국은 즉각 지원에 나섰다. 물론 중국이 북한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외교적으로 북한을 압박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한만 국경선에 장갑차 등을 기동시킴으로써 군사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동맹인 미국의 지원과 비교할 바는 못 된다. 미국은 한미간의 국지도발공동대응계획에 따라 우리 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북한군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을 상향조정했고 포병 전력을 전개시키기도 했다. 또한 상황 변동에 따라 전략자산을 전개시키기로 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스텔스 전투기인 F-22, B-52전략 폭격기, 스텔스 폭격기인 B-2는 물론 핵추진 잠수함 전개까지 논의했다. 결국 이런 튼튼한 한미동맹의 의지가 8·25 남북합의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훈훈한 미담사례도 많이 생겼다. 병사들의 전역 연기 소식을 접한 기업들이 이런 병사들의 용기와 애국심이 회사의 애사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번 8·25 남북합의는 그 동안 긴장되었던 남북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켜 통일대박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초석을 놓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 국민의 단결된 힘, 굳건한 전투준비태세, 그리고 튼튼한 한미동맹에 힘입은 바 크다. 8·25 남북합의를 계기로 다양한 남북회담이 열리게 될 것이고 민간교류가 활성화될 것이며 이산가족이 상봉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약속을 얼마나 신뢰감 있게 잘 지킬지가 관건이다. 합의문을 또 뒤집을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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