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헌주 선생은 대한제국 시기 관립 영어학교에서 수학한 후 1903년 경 하와이로 이주했다.

1906년 경 미국 본토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로녹대학 재학 중이던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한국특사의 통역을 맡았다.

1919년 3•1운동이 미주에 알려진 직후 선생은 하와이 한인들로부터 독립금 3만 5,000달러를 모금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등에 사용하도록 지원했다.

1937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됐으며,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의 건축위원장직을 맡아 LA에서 낙성식을 치렀다. 193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임돼 미주 한인사회를 대한인국민회 중심으로 통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선생은 1941년 재미 한인단체의 역량을 집중하고 항일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국방과장을 맡아 맹호군으로 불리던 캘리포니아 주 민병대 소속 한인국방경위대의 정위로 임명됐다.

1945년에는 광복 직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유엔 연합국 회의에 참가할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으로 선임됐다. 선생은 1965년 85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으며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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