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현(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최근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종전 70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해 의회 합동회의에서 처음으로 연설을 하는가 하면, 이에 대응해 중국과 러시아는 ‘신 밀월’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긴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외교가 위기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미일정상회담을 전후로 동북아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그동안 동맹의 기저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공유해왔다. 2009년 6월 16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 합의했다. 공동비전의 핵심은 “한반도, 아•태지역 및 세계의 평화롭고, 안전하며, 번영하는 미래를 확보한다”는 한미동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Comprehensive Strategic Alliance)’으로 격상시킨다는 것이었다.

포괄적 전략동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한미 간의 공동가치와 상호신뢰에 기반하고 있음을 전제로, 양국의 협력범위를 군사 분야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로 확대하고, 동맹의 활동범위를 한반도를 넘어 아•태지역과 전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뒤이어 2013년에는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을 채택하여 한미동맹 공동비전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한반도 미래상과 경제협력, 양국 국민 관계, 동맹역할 확대 등 4가지 분야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렇게 본다면 한미동맹의 기반은 여전히 굳건하고 동맹에 대한 신뢰는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한미 양측 모두에서 “역대 최상의 관계”임을 언급하고 있고, ‘포괄적 전략동맹’, ‘글로벌 파트너십’ 등 한•미 동맹의 폭과 깊이가 확대.심화되고 있다.

마크 리퍼트 대사 피습에 대한 양국 정부의 효과적인 수습으로 한미관계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둘러싼 안보환경은 우리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우리 주변의 강대국 정치와 지정학의 부활로 인해 불가피하게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아시아 정세를 규정짓는 두 개의 화두는 미국의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요구라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하반기부터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관여와 역할을 강화한다는 일련의 중요한 선언들을 발표해왔다. 미국이 아태 재균형 정책을 채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 이면에는 미중 간 세력관계의 변화가 심화될 경우 미국의 아태지역에 대한 접근성이 제약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전반적으로 이라크 전쟁과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은 여러 각도에서 절대적, 상대적으로 약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판단된다. 최근 미국의 경제력 회복은 이러한 절대적, 상대적 약화현상을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 이외에 미국의 정체성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정당정치의 양극화 현상은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로서 대외적으로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과 상관없이 미국의 ‘상대적’ 쇠퇴에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새로운 국내적 합의의 창출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조건으로서 미국 정당정치의 양극화 현상의 완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당분간 아태 재균형 정책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공약에도 불구하고 역내 국가들의 신뢰도 저하는 불가피하다. 비록 미국이 의지와 관심이 있다 할지라도 능력과 자산이 부족해짐에 따라 향후 미국은 부족한 부분을 동맹국들의 기여와 역할분담을 통해 보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동맹국들을 연계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국방예산 삭감이 가시화되면서 미국이 혼자 세계의 안보부담을 담당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미국은 동맹과 우방의 역할분담을 희망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이제 미국과 우방국들이 힘을 합쳐 안보문제에 대응하는 이른바 ‘연합방위(federated defense)’ 필요성이 제기되며, 한국의 동맹 기여 확대가 요망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비교하는 것은 갈수록 무의미하다. 미국은 한미일 안보협력 증진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네트워크로 엮으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최악의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일관계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2015년 제주포럼에 참석해 “미국은 동맹 강화와 신흥 파트너와의 대화, 다자적인 구조 등 3가지 방식으로 아시아를 접근하고 있다”며, “아태지역 리밸런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미 해군력과 공군력의 60%가 아시아지역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미동맹이 여전히 한국은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 차원으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북핵 문제 해결과 통일을 위해 한미동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의 조타수로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야말로 통일과정 및 통일 이후에도 반드시 협력해야 할 우방이다. 미국은 한국의 통일과정에서 우리의 동맹국으로서 진정으로 지지를 보낼 거의 유일한 국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설득하려면 무엇보다도 통일한국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공통 가치를 바탕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서 더욱 강력한 동맹국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북아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통일한국이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동북아 안보구조를 안정화시킴으로써 미중 및 미러 간 갈등 요인을 사전에 해소하고, 동북아 안보체제 구축 등 동북아지역 평화•안정 공고화에 기여할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북핵.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국 간 ‘한 치의 빈틈없는’ 대북 공조를 지속하여 앞으로도 핵•인권•통일 선순환 추진에 있어 한•미 공조 강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 도발, 비핵화 대화, 북한인권 문제, 우리 통일 정책 등 중요한 상황변화가 있을 때마다 한.미가 긴밀히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동맹은 2013년에 6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성숙한 환갑의 나이를 맞은 것이다.

냉철한 국가이익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동맹관계가 60년을 지속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한국은 안보를 굳건히 하는 동시에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일궈냈고, 정치적 민주화까지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모든 면에서 한국은 미국이 동맹관계를 맺은 여러 국가들 중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 국민은 이러한 성취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이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미동맹이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동맹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다음 60년을 준비하는 동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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