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인 심민은 경찰로 근무하며 6•25전쟁 중 치안 유지를 위해 노력했으나 32세이던 1960년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 근무 중 업무 과로에 따른 심장마비로 순직했으며, 셋째인 심익은 서울고 재학 중에 전쟁이 일어나자, 만 17세의 나이에 학도병에 자원해 낙동강 방어전투에 참전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조보배 여사의 아들이었다.
조 여사는 3형제에게 어려서부터 개인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위해 먼저 희생할 수 있도록 가르쳤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저 없이 나가 싸울 수 있는 투철한 국가관이 확립되도록 교육했다.
조 여사는 세 아들을 모두 나라에 바친 이후에도 나라를 위한 아들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평생을 봉사와 사회활동에 헌신했다.
조 여사는 강원도 일대 수만 평의 임야를 개간해 이를 무의무탁 제대군인들에게 삶의 터전으로 제공했으며, 개인의 땅을 현충탑 부지로 기증하기도 했다.
“국가가 있어야 자식도 있다”. 일생을 조국에 헌신한 삶을 산 조보배 여사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나라사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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