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점곤 육군 소장.
1950년 8월 3일부터 9월 2일까지 약 한 달에 걸쳐 계속된 다부동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파리를 지키기 위해 연합군이 펼쳤던 ‘베르뎅전투’에 비유될 만큼 처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투였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개성, 문산, 파평산, 봉일천 일대 방어전과 음성지구전투, 화령장전투, 영강전투 등에서 싸워 온 김점곤 소장의 제12연대가 마침내 다부동에서 수세 일변도의 전세에 반격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9월 25일부터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한 제1사단은 보은-청주-안성을 거쳐 고랑포로 진격했으며, 10월 11일 마침내 38도선을 돌파하고 평양탈환작전에 돌입했다. 제12연대장 김점곤 대령은 패주하는 적에게 반격의 여유를 주지 않고 추격을 거듭한 결과, 10월 19일 기계화부대를 선두로 적 진지에 돌격을 감행하며 마침내 제일 먼저 평양에 입성함으로써 우리 군의 자존심과 명예를 높였다.

평양 입성 후 재정비할 여유도 없이 북진을 계속하던 제12연대는 10월 25일 청천강변에서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반격을 맞닥뜨렸다. 전세의 불리함을 판단한 연대장 김점곤 대령은 주도면밀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수차에 걸친 맹공격을 감행해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후 제12연대장 김점곤 대령은 제1사단의 우익연대장으로서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부 임진지구전투에 참전했다. 적의 제2차 춘계공세를 무력화시킨 이 전투에서 그는 탁월한 지휘력과 임기응변의 기지 및 전략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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