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희 작 ‘그 날들’
“당신은 정원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다. 그런데 미술관이 이 정원을 제공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울창한 초록빛 숲의 마중으로 시작되는 ‘정원’전은 이제 개관 1주년을 맞게 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국민들에게 이상적인 정원 같은 곳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1. 만남
“가슴 속에 만권의 책이 있고, 눈으로는 전시대의 명전을 두루 보며, 또한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천하의 반은 되어야만 바야흐로 붓을 댈 수 있다” 조희곡(남송, 1195년경~1242년경 활동)

동기창(명, 1555~1636)에 이르러 ‘만리의 길을 가고 만권의 책을 읽다(行萬里路 讀萬卷書)’ 로 표현됐던 이 말은 배우고 익히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얻는 모든 경험들 또한 예술의 근원이 되는 것임을 나타낸다.

이곳에서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다채로운, 심지어 현란하기까지 한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 강남미 작 ‘소나무061115’
2. 쉼
산림과 정원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천품을 수양하는 것은 누구든지 원하는 것. 속세의 풍진에 구속받는 것은 누구나 싫어한다.

안개 피어오르고 구름 감도는 절경속의 신선은 누구든 동경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과 귀가 보고 듣고 싶은 것에 단절되어 있으니, 훌륭한 솜씨를 지닌 화가를 얻어 그 산수자연을 멋지게 그려낸다면, 굳이 산과 정원을 찾지 않아도 그 경치를 즐길 수 있을 것.자연을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맑은 생명력을 그림을 통해 대신 얻고자 했던 바로 이 이유로 인해 북송대 화단의 주류는 인물화에서 산수화로 바뀌게 된다.

현란한 색채와 감정들의 폭주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쉼’의 공간은 장엄한 폭포 아래 펼쳐지는 울창한 흑백의 숲을 통해 번잡했던 호흡을 내려놓고 폐 깊숙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같은 환기의 경험을 준다.

3. 문답
 숲을 지나 들어가는 어두운 공간에서, 18세기의 조선의 괘불과 21세기 미국의 미디어 작가의 작품이 서로 마주보며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마련된 야외의식에서 사용되는 ‘거는 불상’인 괘불은 전 세계 단 세 나라, 티벳, 몽고 그리고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매우 희귀한 문화유산. 이 공간에 등장하는 괘불은 석가모니로 알려져 있다.

꽃을 들고 있는 장면은 ‘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배경으로 한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 중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는데, 석가모니가 떨어진 연꽃 한 송이를 사람들에게 말없이 들어보였을 때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는 이야기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4. 소요유(逍遙遊)
소요유는 얽매임 없이 여유로운 것을 의미하는 ‘소요하다’와 ‘유(遊)’를 한 단어로 결합한 장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 영혼의 정화와 정신의 해방, 도의 체득을 함께 아우르는 이 유희는 장자미학의 중요한 요소다.

‘정원’의 출구를 향하는 ‘천원지방(天員地方)’의 연못의 형태를 닮은 전시의 마지막 영역은 MMCA 소장품 명품선. ‘우리는 혁명이다’라고 외치는 요셉보이스의 작품과 오랜 벗을 상징하는 로봇을 타고 청산으로 유유히 날아가는 서은애 작가의 유괘한 상상이 펼쳐지는 작품들이, 서사를 거부한 단색화 작품들과 한 공간에 공존하며 가운데 둥근 섬을 차지하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정원을 거닐고 나온 모두에게 하는 대답은 이렇다. “당신에게는 그런 정원이 있습니다”4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가유공자와 배우자는 무료 입장.

▲ 이두식 작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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