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흥 선생은 1923년 19세의 나이로 만주로 망명해 통의부와 참의부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참의부 이후 국내 진공작전 이후 독립군이 활동이 주춤해지자 선생은 조선총독부 총독을 비롯한 고관들을 처단함으로써 침체된 무장투쟁의 분위기를 되살리고자 1926년 5월 국내로 들어왔다.

참의부 제2중대 특무정사의 자격으로 국내에 침투한 선생은 황해도 평산을 거쳐 경성에 잠입한 후 동소문파출소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였다. 이후 독립군 자금 모집을 위해 안성 부호의 아들을 처단하고, 이천 현방경찰주재소와 백사면사무소를 습격했다.

일제 경찰은 선생의 신장이 5척에 불과하다는 단서를 잡고 관내에 거주하는 단신들을 모조리 조사하게 했다. 3,000여 명이 동원된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투쟁을 이어가던 선생은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됐다.

선생은 3년의 예심 끝에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언도 받고,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채 1929년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일제 식민통치의 심장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선생의 뜻을 기려 2월 27일 경기 이천 이수흥공원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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