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육군 중장은 1920년 중국 귀주강무학교를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해 1945년 4월에 한국광복군 참모장이 되어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는 등 독립군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된 김홍일 소장은 3일 만에 북한군이 서울까지 진격해 들어오자 후퇴하던 국군을 결집해 3개의 혼성사단을 편성하고 한강 이남 24km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김홍일 소장의 진두지휘 아래 국군은 노량진-영등포 일대와 신사리-말죽거리 일대에서 도하하려는 북한군을 저지했다. 치열했던 한강 방어선 전투는 비록 일시 후퇴로 끝났지만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함으로써 차후 작전을 위한 전기가 마련됐다.

한강 방어선이 붕괴된 후 김홍일 장군은 예하의 제2사단 16연대와 제25연대, 독립 제17연대를 지휘해 진천 남쪽 봉화산-문안산 일대에서 전차와 포병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2사단의 남침을 5일 동안 저지했다.

7월 15일 독립 제17연대는 화령장 북쪽에 매복 작전을 펼쳐 속리산으로 남하해 상주로 침공하려는 북한군 선두부대를 기습 궤멸시켰고, 낙동강전선으로 철수, 방어에 돌입한 후에는 기계-안강-영덕-포항 일대에 침공해온 북한군에 역습포위작전을 전개하여 적을 비학산 방면으로 격퇴했다.

정부는 김홍일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56년 태극무공훈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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