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매도, 70x50cm, 송윤환 작.
다사다난했던 갑오년 한해도 끝자락에 와 있다. 월력의 마지막 장이 애처롭게 보인다. 한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일까. 첫눈이 오고 추위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온 몸이 움츠러지는 오늘이다.

나이가 들면 겨울과 함께 인생의 고통도 더 심해지는 법이다. 어디서 오는지 뼈저린 고독이 더해진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까운 이웃과의 따뜻한 대화, 편안한 나눔이 삶의 명약이 된다.

우리 인생이란 타인의 삶과 얽혀진 연결고리 속에 존재한다. 인간은 혼자 살수는 없다. 외로움 속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아침에 뜨는 해와 함께 또 하루를 기약 없이 혼자 보내는 노후는 불행하다. 인생이 함께 사는 삶 아니던가.

나는 전업작가라는 직업이 있어 은퇴 없는 삶을 계속하고 있다. 다행이다. 그림과 작가라는 매개를 통해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멈추지 않고 내일을 계속할 수 있다. 하늘에 고마워할 일이다.

오늘도, 계속되는 일과지만 아침에 화실에 나와 혼자 커피를 끓인다. 그리고 어제 못한 작업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방 구석구석에 남은 묵향이 새로 시작하는 묵향을 기다리는 듯하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내용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려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몸을 일으켜 붓을 잡는다. 물론 쉽게 그림이 구상되고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알면서 욕심을 내는 게 오히려 작업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화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불꽃을 화선지에 담는다. 위대한 작품은 화가 자신이 남긴 최후의 과업이다. 그 작품에는 작가의 사상과 정신 그리고 감정이 담겨 있고,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표현이 있다.

가을 볕 좋은 날, 소백산의 정기가 흐르는 화실은 내 삶과 가치를 표현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막역한 이웃과의 즐거운 대화와 점심이 있었다면, 거기에 한 사발의 ‘에너지’가 더해졌다면, 오후의 작업은 더 힘이 붙을게다.

이어지는 붓질은 인생 작업이다. 한 순간 내 정신을 집중하듯, 놓아버리듯 하는 휘저음 끝에 작품은 제 모습을 찾아간다. 거기에 내 인생이 오롯이 담긴다. 내 철학이 담긴다.

다시 그림 앞에 서면 내 삶의 투영인 듯 나를 떠난 혼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송윤환(월남전 참전유공자로 현재 경북 영주에서 문인화 화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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