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한 범 국방대 교수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의 삶을 영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변 환경으로부터 공동체의 안전을 확보하는 문제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제1의 관심사였다.

이러한 안보의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류역사에서 안전보장의 역할은 공동체 구성원 중에서 소수의 집단에 의해서 수행되어왔다.

이들이 전쟁에 나가 싸우는 이유는 편협한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확대된 자아로서의 공동체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희생이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보듯이 당연히 대부분의 공동체는 이러한 희생에 대해서 최대한의 물질적 보상과 정신적 보상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공동체의 삶속에서 ‘보상’ 체계화이러한 보상은 단지 과거의 희생에 대한 보답의 차원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보상을 공동체의 삶속에서 체계화함으로써, 조직의 장기적 안정과 사회통합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 보상이 따르는 것을 예측가능하게 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장차 자신들의 가족들에게도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리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인 헌신과 희생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보훈의 중요성이나 의의는 시대와 상황을 떠나 변하지 않는 진리이지만, 보훈의 범위나 강조점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해왔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상황은 우리에게 보훈이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개념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세계사에 남긴 흔적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열전인 한국전쟁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대열로 전환한 나라라는 점이다.더구나 현대 사회는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국가 간의 경계가 희미해져가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의 연계 속에서 중요한 국내외 정책들이 결정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다른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조 없이는 효과적인 정책을 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존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

이러한 엄중한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국제사회에서 결정적 시기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우방들을 확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외교안보적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과 우호적인 친선관계나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 중 하나는 외교상대국 내에 우리에게 우호적인 친한파 내지는 지한파를 양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이러한 역할들을 수행해 주었다.

우리 정부도 이들이 한국과 유대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국내로 초청하고 해외에 기념비를 세우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왔다.

참전용사 후손 친한파 역할 확대안타깝게도 이제 그 참전용사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생존자들이 많지도 않고, 그들을 먼 이곳까지 초청하는 것이 쉽지도 않다.

이것은 이들 국가들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지지하고 협력해온 참전용사들의 친한파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어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제 이러한 친한파들을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친한파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은 바로 이들 참전용사들의 후손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조상의 업적에 대해서 우리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최적의 배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조상이 부당하게 침략당한 약소국을 위하여 정의롭게 맞서 싸운 역사를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할 사람들도 바로 이들 후손들이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조상들을 기억해주기를 소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과 손을 잡고 한국전쟁에서 정의를 위해 싸운 용사들을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한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쉽게 대한민국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해당국의 외교적인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후손들과 대를 잇는 보훈의 방안으로는 다양한 내용들이 논의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후손들이 조직을 만들어 함께 교류하며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조직들이 자국 내 다른 지한파들이나 단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연결망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들을 이어주는 중심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들 정체성에 대한민국이 각인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말고, 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거나 우리의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하는 이벤트나 제도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이들이 해당국가에서 엘리트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후일 자국에서 대한민국을 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발도상국의 참전용사 후손들을 위해서 장학사업을 시행한다든지, 의료보건 사업을 진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최근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공적개발원조를 이러한 보훈사업과 연계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대관계는 해당 국가 내에서 친한파와 지한파의 뿌리가 되어 결국 우리에게 외교적, 경제적, 안보적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외교안보적 투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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