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호근 청주대 교수
20세기까지 국제관계의 양상이 지정학 그리고 군사력, 경제력에 기초한 국력을 축으로 하는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전개됐다면, 21세기 탈근대 국제사회의 양태는 개방된 소통 과정을 통한 설득과 이미지, 그리고 매력에 근거한 영향력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른 해체와 통합의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국제관계의 변화현상 중의 하나는, 국가의 주권을 위임받은 특정한 대표에 의해서 수행되는 전통적 외교의 수행방식에서 벗어난 이른 바 공공외교 (public diplomacy)방식이 일상화되고 있다.

말하자면 자국의 목표와 정책뿐만 아니라 사상과 이상, 제도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정부가 타국의 대중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이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외교의 주체와 대상으로서 대중들의 힘과 영향력이 소위 ‘피플 파워’라고 지칭될 수 있을 만큼 부각되고 있다. 공공외교의 주요한 속성들은 보훈외교와 다양한 측면에서 접점을 이룬다.

보훈외교는 전통적 외교의 맥락과 비전통 외교의 맥락이 결합되면서 공공외교와는 밀접한 친화성을 갖는다. 즉 국가의 안전보장을 근간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가운데 사회적 보편 가치를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행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보훈외교는 6·25 전쟁 참전국들과 참전 군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보상과 사회적 예우를 제공하려는 노력과 연관되어 있다.

기존의 정치, 군사 외교 등 전통적 국제관계의 차원과는 차별성을 보이면서 공공외교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첫째로 보훈 외교는 보훈 관련 기관, 인사들 및 보훈 차원의 국제적 연대 강화는 물론이고 사회 경제적 지원 등과 같은 기능적 분야에서 수행될 수 있다.

둘째로, 각국의 시민사회와 밀접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정치, 안보관련 외교의 경우는, 통상적으로 시민사회와의 관련성 보다는 정책 결정 및 집행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그렇지만 보훈 관련 부문은 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 등 일반 대중들과 폭넓고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셋째로, 보훈 외교에는 비정부 행위자들의 개입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 미국재향군인회, 한국전참전협회, 미국해외용사 참전협회 등 주요 단체만 7개나 되며 회원 수는 60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각국의 보훈 관련 단체들과의 상호 교류와 기능적 협력, 네트워크 형성 등이 중요한 영역이다.이처럼 대한민국 보훈외교의 실천은 유엔의 깃발아래 참전한 국가 및 국민들과의 협력관계에서 시작한다.

6·25 전쟁 때 한국을 위해 병력을 보내준 국가는 21개국에 달한다. 미국, 영국, 터키 등을 포함한 16개국은 전투 병력을 파병하였고, 스웨덴 인도 등 5개국은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하였다. 이 외에도 병력을 직접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이 효과적으로 전쟁수행을 할 수 있도록 물자와 비용을 아낌없이 지원한 국가도 20여 개 국에 달한다.

이들과의 외교적 유대와 네트워크의 형성은 보훈을 통한 공공외교 수행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한국의 안보에 대한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함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동반된 보훈정책의 대외적 수행이다.

이러한 6·25 참전 국가들 및 참천용사 등과 연관된 각종 행사 등은 해당 국가의 대중들에게도 정서적 공감을 함께하고 호소할 수 있는 극적인 속성을 지닌다. 특히 대규모 참전군인 관련 행사나 프로그램의 수행은 그 행사를 주최하는 국가의 이미지를 생동적이고 상호적으로 표현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을 대상으로도 동시적으로 확산된다.

더불어서 이러한 만남의 장 속에서 상호간의 이해와 친선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비율을 점차적으로 증대시킨다는 계획과 더불어서 모범적이고 통합적인 개발협력을 추진할 방침을 천명하고 있으므로, ODA와 연계된 보훈외교의 좌표 설정은 중요한 실천 방안일 것이다.

즉 한국전쟁 당시 파병 및 각종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에 도움을 주었던 63개국에 대하여 선별적으로 한국의 ODA사업과 연계하여 보훈외교 업무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보훈외교와 연계된 공적 개발원조 프로그램의 수행은 국가 이미지 제고, 나아가서 새로운 국가 브랜드의 창출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수행되는 개발원조는 장기적이고 수원국을 배려하는 장기적 전망에 입각해서 입안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실천과정을 통해 형성된 국가이미지는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위신과 명성을 제고하는 한편 정치·경제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외교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보훈외교를 통한 교류와 협력을 공공외교의 차원에서 엮어 내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과 정부 부문 간의 거버넌스의 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보훈정책은 체제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주요 통치기제의 하나로서, 집권정부의 성격이나 정책을 초월하는 일관성과 통합성을 지녀야 한다.

따라서 국가적 정체성과 정통성의 맥락과 일치하는 보훈외교의 수행도 임기제 정부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일관된 통합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민주국가의 외교정책 수행은 국가의 안과 밖을 둘러싼 내포와 외연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보훈에 대한 당위적 강조를 넘어서는 대내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보훈외교의 지속 가능한 내적 기반이 튼튼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 이 기고는 지난달 19일 한국정치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저자가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최근 신문 PDF보기 ◆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