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재익 강남대 교수·안보학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인 국가 기념일이다.

정부는 유엔군 참전·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유엔군 참전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후대에 계승하기 위하여 유엔군 참전의 날을 지정하는 법률을 2013년 7월 26일 공포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7월 27일을 단순한 6·25전쟁 정전협정일로 기억하는 차원을 넘어 정부주관으로 기념일 행사를 하고 나아가 참전국가간 확고한 우호협력을 구축하여 보훈외교를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엔참전의 날 제정의 의미어떻게 보면 전쟁 당사국으로서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6·25전쟁 참전국인 미국과 캐나다는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 또는 ‘한국전 참전의 날’로 지정하여 자체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기념일 제정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기습남침에 의해 풍전등화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유엔군이 참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킬 수 있었고, 나아가 오늘날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준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고 유엔군 참전 의의를 재조명한다는 뜻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특히 전후세대들에게 동맹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그것은 또한 6·25전쟁에 참전하였던 대부분의 유엔 참전용사들의 연령이 평균 82세의 고령으로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 국민들이 기념일을 통해서 그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의미도 있다.

또 혈맹으로 맺어진 인연이 후대에까지 유지·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알리고 동시에 유엔군 참전의 중요성을 영원히 기억하며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한미동맹 강화의 역사 한편 정전협정 이후 한국은 유엔군의 주축인 미국과 같은 해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 근거하여 미군이 한국방위를 위하여 1954년 7월 1일 주한미군(USFK)이 서울에 창설되고 한국과 미국은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어 1954년 11월 17일 한미는 한국군에 대한 전력 증강과 전후복구를 위해 경제원조 지원을 위한 ‘한미 합의의사록’을 채택하였다. 이로써 미국은 한국군에 대한 물자 및 장비 지원과 경제발전을 위해 본격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특히 한미 양국은 대내외 상황 변화를 고려하여 북한의 위협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1978년 한미연합사(ROK-US CFC)를 창설하였다. 이로써 한국의 방위를 한미연합사가 담당하고 한반도 정전관리는 유엔사(UNC)가 수행하는 체계가 된 것이다.

1990년대. 이제 세계는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탈냉전시대가 도래하였다. 1991년 미국은 쿠웨이트를 침략한 이라크와의 전쟁을 수행한 걸프전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서 한국은 의료진 등을 지원하였으며, 9·11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 전 및 이라크 전을 수행하자 여기에도 의료지원, 건설 및 민사부대를 파견하여 동맹국을 지원하였다.

여기다 2012년 3월 한미FTA를 발효시킴으로써 군사동맹에서 경제까지를 아우르는 포괄적 동맹, 핵확산 방지 및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는 글로벌 동맹, 나아가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체제 등 공동가치를 존중하는 21세기 전략적 동맹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변화와 한미동맹최근의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는 상당한 변화 국면이다. 북한은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도발, 3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2013년 사이버테러 및 올해 무인정찰기 도발을 감행하였다.

동북아지역에서는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일방적 선포에 이어 일본은 보통국방군화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으며 동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의 해양세력 확장에 따라 미국은 핵심축을 아시아(Pivot to Asia)로 전환하고 일본, 필리핀, 호주 등 새로운 전략지대를 구축하여 협력보다는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4 갑오년은 청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의 발발 120주년 및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20년 전의 청일전쟁 상황은 동학농민군에 대한 통제능력이 부족하여 조선이 청에 파병 요청을 하면서 일본도 출병하여 전쟁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살 사건을 도화선으로 부상하는 독일에 대해 기존 강국인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견제하고 그에 대한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오스트리아 및 헝가리가 동맹체제를 구축하면서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세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중일간의 충돌, 또는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무력 충돌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전쟁으로 확대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1894년 당시의 약소국 조선이 아니다. 이제 중견국 한국은 한반도, 동북아, 글로벌 3차원의 퍼펙트 스톰을 중앙 돌파할 것이지, 우회하여 나아갈 것이지 아니면 그 기세가 누그러들기를 기다렸다가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하여야 한다.

한반도에서 촉발하여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을 방지하고, 한반도에서 또다시 동아시아의 각축장이 되지 않도록 외교 역량을 갖춰 나아가기 위해 먼저 국민의 안보의식을 높이고 한미동맹은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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