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가족과 함께한 23년

쌓인 세월만큼 깊어가는 정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른 낙엽 위로 기분 좋은 사각거림을 느끼며 들어선 국립대전현충원은 완연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울긋불긋한 단풍과 여전히 꼿꼿함을 유지하는 사철나무들 사이로 엄숙함이 감도는 이곳을 23년간 한결같이 지키며 보훈가족과 한호흡으로 살아온 김임모(46) 주무관을 만났다.

 

330만㎡ 대지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13만여 위를 모신 대전현충원은 연간 300만여 명이 방문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예를 다해야 하기에 이곳을 돌보는 그의 눈길과 손길에는 익숙함과 함께 신중함이 익은 듯하다.

그는 현재 현충원의 관리팀 소속으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소독과 함께 현충원 내의 수 많은 나무들이 각종 병충해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 활동과 시설물 점검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참배객 외에 인근 지역에서 산책과 휴식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생활폐기물 처리 관련 업무도 늘었다.

그가 이번에 든든한 보훈인으로 선정된 것은 꼼꼼하고 효율적인 일처리와 더불어 선양팀에서 오랜 기간 홍보담당자로 있으면서 기자들과 협력하며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 현충원 홍보에 앞장섰던 공이 컸다.

그는 “든든한 보훈인으로 선정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다”면서 “앞으로도 보훈가족과 함께 제 마음의 고향과 같은 현충원을 잘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그가 현충원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23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간 관리팀, 전례팀, 현충팀, 선양팀 등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 왔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현충원 어느 곳 하나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는 듯하다. 곳곳을 관리하며 지켜온 시간이 긴만큼 그를 알아보는 보훈가족도 많다.

“현장에서는 순간순간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슬픔을 달래려다 만취한 분들을 집에 돌려보내드린 일도 가끔씩 있고요.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제사음식을 권하는 분들을 만나면 사람 사는 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주 오시는 분들과는 정이 들어 이제 저도 먼 친척쯤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많은 유가족들과의 인연이 있지만 천안함46용사의 가족들과는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을 갖는다. 그 자신도 아직 어린 자녀를 둔 아버지 입장이라서 그럴까. 아직 청춘인 아들을 현충원에 묻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찾아오는 천안함 가족의 아픔을 남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몇몇 가족들과의 인연은 이제 해마다 ‘서해수호의 날’ ‘현충일’ 등 추모의 자리가 있을 때마다 함께하는 것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보훈가족과 정을 나누며 김임모 주무관의 대전현충원에 대한 애정은 조금씩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마음은 가족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의 가족은 매년 함께 대전현충원 묘역 정화활동과 걷기대회 등에 참여하는 진정한 ‘현충원 가족’이 됐다.

청년시절부터 장년, 중년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현충원과 함께 살아온 그의 바람은 그저 지금처럼 현충원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더불어 여유를 주는 공간으로 계속 있어주는 것이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현충원 곳곳을 누비며 누구나 찾고 싶은 현충원 만들기에 진심을 더하고 있다.

지난 23년간 대전현충원을 지켜온 김임모 주무관. 묘역을 보살피는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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