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바람이 분다. 섬돌 밑에서 밤을 새워 가며 안타까이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바람이 문풍지를 울릴 때마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 소리에 달빛이 서럽게 흐른다. 애달픈 닭 울음소리는 그리움과 회한의 눈물이 내 야윈 가슴팍을 치며 왈칵 밀려온다.

야트막한 야산 초입, 산기슭에 아담한 단독주택에 딸은 서울에서 춘천으로 아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했다. 도시에서 누릴 수 없는 여유 속에 텃밭에다 채소도 심었다. 병아리를 가족으로 오골계, 청계를 20마리 사서 방 안에서 함께 살았다. 추워서 얼어 죽을까봐 방에서 함께 지낸다고 한다. 냄새도 그렇지만 삐악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신경이 무디어서, 아니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 그런가 보다. 아직도 철없이 감성만 출렁인 것 같다. 이성으로 생각을 먼저하는 엄마를 닮지 않고 감정이 풍부한 아빠를 많이 닮았다. 종류가 다른 닭인데도 이리저리 가족처럼 몰려다니며 잘 지낸다. 함께 산다는 것, 고락을 함께한다는 것은 집단생활에서 사랑의 시작인가 보다. 가족이란 삶이 고통스럽고 힘이 들 때 서로 믿고 사랑을 나누듯이 동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온기를 잃은 저녁 햇살 속에 찬바람이 분다. 닭장을 비닐로 추위를 막기 위해 일을 하다가 닭장 문이 열려 다 도망갔다. 어찌나 빠른지 잡을 수가 없다. 있는 힘을 다해 동네사람과 아이들까지 모아서 잡았지만 몇 마리는 못 잡았다. 산이 가까워 밤이면 고라니, 살쾡이, 삵 등이 사냥을 나온다. 밤새 집에 있는 닭은 아주 섧게 우는 듯했다. 이별의 슬픔은 닭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집 나간 닭들에게 신호를 보내는지 교대로 ‘꼬기요’를 계속한다.

동이 튼 아침에 갑자기 큰소리로 요란하다. 나가서 보니 몇 마리가 돌아왔다. 마주 보면서 여느 때와는 소리가 달랐다. ‘구구’ 소리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마 그들의 반가운 대화이지 싶다. 자고 나면 아침에 한, 두 마리씩 돌아왔다.

한 마리만 돌아오지 못하고 며칠이 지났다. 포기할 만도 한데 계속해서 목청이 터지도록 부른다. 숫자 못 헤아리는 닭이라고 생각했는데 식구가 없는지 알고 있나 보다. 동네 사람들은 지금까지 오지 않은 것은 산 짐승한테 먹잇감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어떻게 집을 알고 찾아 왔을까? 참으로 똑똑하기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얼마나 반갑고 대견한지 식구들과 함께 울고 말았다.

닭들은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장하다. 인간도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다림 속에 살고 있다. 닭들은 다 모인 식구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 밤부터 조용했다. 머리가 나쁜 사람보고 ‘누가 닭대가리’라고 했는지, 참으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다림이 희망으로 바뀌는 인내심의 체험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가족의 의미를 알았다. 가족의 사랑이 깃든 공간에서 하루하루 웃으며 지내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이 아닐까.

하택례 오랜 기간 수필과 시를 쓰면서 작품집 ‘행복한 파랑새’, 시집 ‘별빛으로 만난 행복’을 냈으며, 현재 전몰군경미망인회 은평구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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