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창양로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직장생활을 통신사에서 보내다 어느 해인가 십시일반으로 직원들이 연말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했는데 그 가운데 일부를 대창양로원에 지원하게 됐다.

그곳은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들이 나라 잃은 설움과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정부의 주선으로 귀국해 지내는 곳이었다. 입주하신 분들은 대다수가 무의탁으로 연고가 없는 고령의 노인이었다. 내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우연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대단한 인연이기도 하다.

은퇴 후 어느 날, 문득 대창양로원의 사할린 교포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떻게 지내는가 싶어 궁금하기도 해서 찾아가기로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새로 오신 분들도 있어 그때의 모습보다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도 애틋한 정이 느껴지는 것은 여전했고, 그 가운데는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한 분 한 분 그분들의 손을 잡아드렸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양로원 환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말벗이 되어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예전에 근무했던 기관에 요청해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지원받고, 주변의 도움을 얻어 강의 시설도 갖췄다.

일을 추진하면서 지금까지 세상을 각박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런 따뜻한 면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데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다.

새로 만들어진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단상에 올라 ‘나의 세계여행’ 강의를 할 때는 이분들이 너무나 좋아해 주셔서 ‘착한 일 한 번 하는 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절로 뛰었다. 내가 세계를 여행한 67개국에 대한 여행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갈 계획이다. 고맙게도 어르신들은 넓은 이해와 열렬한 호응으로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셨다.

한번은 러시아 여행 중 만난 여행객에게 여담으로 양로원 얘기를 꺼냈더니 즉석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하곤, 이후 매월 닭을 30마리씩 양로원으로 보내주고 있다. 그 분의 도움으로 양로원에서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잔치가 열린다. 잔치가 열리면 즐거운 웃음소리가 양로원을 가득 채우며 좋아들 하신다.

한 번은 추석명절 즈음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할머니 한 분이 복 많이 받으라며 복주머니를 선물로 주셨다. 복주머니가 선물인 줄 알고 나중에 열어보니 꼬깃꼬깃 접힌 지폐가 여러 장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대로 돌려드리면 안 받으실 것 같아 고민 하다가 따뜻한 겨울 내의로 돌려드렸다.

어느 틈에 양로원 어르신들과 지낸지도 10년이 넘어간다. 양로원 어르신들을 대할 때마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더 많은 것, 좋은 것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늘 죄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 나는 양로원을 찾는 매월 첫 번째 월요일로 한 달을 시작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해온,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이다.

장진수 6·25전몰군경 유자녀. 오랜 기관 통신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세계여행을 다니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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