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이면 가끔 속이 쓰려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위염증세가 있으니 커피나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다. 사이다나 콜라 같은 탄산음료야 별로 마시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건 나에게서 즐거움 하나를 제하는 일이다.

커피를 처음 만나건 60년대 말 베트남에서다. 당시 병사 개개인에게 지급된전투식량인 C레이션 안에는 커피며 설탕봉지와 크래커, 닭고기 등 통조림이 들어 있었다. 설탕은 단 것이니 그냥 먹었고 커피는 쓰디 쓴 게 ‘영 아니올시다’해서 뜯지도 않고 봉지 채 그냥 버렸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월남에서 C레이션을 받았던 대부분의 병사들이 커피를 그냥 버렸다.

귀국 후에는 다방에서 커피를 가끔 마셨지만 커피보다는 유자차나 쌍화차를 즐겨마셨다. 1980년 암사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까지 통근버스로 출근을 했는데 통근버스에서 내리면 근무시작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일행과 함께 근처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사무실로 향했었다.

당시 다방에서는 매일 들르는 우리들에게 다방에서는 계란 노른자를 커피에 넣어 주었다. 단골손님에게만, 그것도 아침에만 주는 특별한 대접이었다. 쌍화차에만 넣어주던 계란 노른자를 커피에 넣어주니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후 믹스커피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자판기가 들어오고 어디에서건 누구나 커피를 마시는 시대가 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 외국 유명 커피브랜드가 상륙해서 열매를 볶고 갈아서 내려 마시는 커피를 선보이더니 지금은 블랙커피가 대세가 된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활력이 솟구친다고 한다. 그런 기분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도 가끔 밤늦은 시각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이룬다는 친구들은 커피를 즐기는 계열에서 보면 초급 수준일 것이다.

얼마 전, 베트남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촌동생이 커피를 가져와 마셔보니 과연 커피의 진면목을 대한 것 같은 진하고 은은한 향이 나를 매료시켰다. 베트남에서 살다(?)온 내가 이제야 베트남이 커피의 주산지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때 좀 더 일찍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오늘도 점심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끊으라는 의사선생님의 권고를 잊은 채 진한 커피향에 취해 본다. 커피를 끊는다는 게 담배 끊기보다 더 어렵더라는 선배의 말을 떠올리면서 이 그윽한 향에서 나를 떼어 놓는다는 생각만 해도 외롭고 쓸쓸해진다.

김차복 월남전 참전유공자. 정보통신부와 통신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서울 명일동에 거주하며 시조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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