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따뜻한 도서관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새해가 활짝 열렸다. 이제 조금 더 여유 있게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집안 가득 짐이 흐트러져 있다면 좋은 물건을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법, 마음도 그러하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정리해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빈 공간, 여유를 두면 좋겠다.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며 나름의 생의 궤적을 그리며 쓴 글이 오늘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 박완서, 세상에 예쁜 것(마음산책)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문단의 대표 여성작가로 우뚝 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소설가, 그의 이름 석 자 외에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 책은 2011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출간된 책이다. 기존에 출간된 어떤 산문집에도 실리지 않은 원고를 그의 딸이 노트북과 책상 서랍에서 발견해 책으로 엮었다.

그는 희망을 주는 새 생명의 힘과 소중한 존재와 순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은 뒤 깊은 슬픔을 담담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이야기 하고, 그 고통을 치유하는 데 원동력이 되어준 ‘세상에 예쁜 것’인 새 생명과 소중한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드러낸다.

굴곡을 겪으며 살아온 인생에 대해 그가 새롭게 얻은 깨달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표한한 글들은 책을 읽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슬픔과 감동, 고마움 등 생생한 그의 감정을 따라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눈시울은 붉어진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 더 많구나, 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세상에 예쁜 것’ 중에서)

 

# 김영하,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삶의 여유가 간절히 필요할 때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현실의 무게와 짐들을 잠시 벗어두고 생소한 것들을 마주하다 돌아오면 익숙한 것들도 신선하게 느껴지며 활력을 얻는다. 하지만 언제나 훌쩍 떠날 수는 없는 법, 그럴 때는 여행에 대한 글을 읽으며 잠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여행의 이유’의 저자 김영하는 199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부터 최근의 ‘살인자의 기억법’ 등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다.

“여행은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첫 여행의 순간부터 최근까지, 모든 여행 경험과 그곳에서의 느낀 다채로운 사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여행지에서 겪은 경험을 풀어낸 여행담이기보다는 여행을 중심으로 인간과 글쓰기, 타자와 삶의 의미로 주제가 확장돼가는 사유의 여행에 가깝다. 여행의 의미에 대해 누구나 느꼈을 법한 그러나 문장으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두었던 사유의 자락들을 풀어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 은희경, 생각의 일요일들(달)

은희경 작가의 ‘생각의 일요일들’은 제목처럼 일요일의 쉼을 가져다 준다.

이 책은 풍부한 상상력과 능숙한 구성력,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신선하고 유머러스한 시선, 감각적 문체 구사에 뛰어난 소설가로 인정받아온 그가 등단 이후 처음 발간한 산문집으로, 소설을 연재하면서 틈틈이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가 500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을 완성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소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또 그 속에서 작가는 어떤 사유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일요일 같은 생각들을 마주보며 그 여유를 담아보자.

이 책은 ‘작가는 어떤 공기를 호흡할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한 작가의 창작노트이기도 한 이 책은 그의 일상을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 담아 유쾌함을 선사한다.

그의 글을 통해 10여 권의 소설책을 낸 그의 호흡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 쉬는 우리의 사유가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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