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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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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3  10: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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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 왔다. 그래서 그런지 쌀쌀한 느낌이 드는 바람이 분다. 나뭇잎도 하나 둘씩 떨어지고 있다. 운동을 하며 누워 하늘을 보면 구름 한 점 없는 겨울 하늘이 선명하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까치집도 겨울을 준비하는 듯하다.

까치 부부가 집을 보수하는지, 한 녀석은 계속 나뭇가지를 물어오고, 다른 한 녀석은 그 가지를 정성껏 쌓고 있다. 흡사 인간의 부부 생활을 연상케 하는 그들의 겨울나기 준비인가 보다.

아내가 동치미를 담는다고 부산하다. 옛날보다는 작은 무를 깨끗하게 닦고 배와 실파를 한 주먹씩 실로 감아 놓고 소금물에 여러 번 걸러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 정성을 다하는 눈치다.

내 어릴 적 겨울 김장은, 주부들의 일년 중 제일 큰 행사날이다. 겨우내 집안 식구들이 먹을 깍두기, 동치미, 총각김치 등 일년 먹을 김장을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맛이 어떨지, 먹어보고 간을 더 하기도 하고, 짜다고 하면 배추를 더 넣어 간을 맞추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집 김치가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고 소문나면, 그 집 안주인은 항상 비행기를 탄 것처럼 우쭐해한다.

그러니 김장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긴장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어머니는 그 맛 때문에 온 신경을 쓰면서, 아이들이 내는 거친 소리도 불결하다 하시며, 아침엔 특별히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기도 한다.

예전엔 김장이 시작되면, 그 커다란 행사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판이 컸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초등학교 4, 5학년인 나는 하루 종일 절인 배추에서 소금물이 흐르는 걸 그대로 지게로 나르는 일을 해야 했다. 하루 종일 다리가 아플 정도로 동네 앞, 개울에서 집까지를 수십 번 왕복하는 일은 고된 일이었다.

그래도 어머님이 나를 보면서 일손을 도운 것을 칭찬하시고, 이웃 어르신들이 “고 녀석 참배 같이 생겨서 똑똑하고 착하네”하며 추켜세우면 절로 으쓱해지는 계절, 그게 겨울 초입의 김장철이다.

나는 그 칭찬 때문에 하루 종일 엄마의 일을 지치지 않고 도왔다. 기분 좋게 시작한 일을 도중에 그만 둘 수도 없어 다리가 아프게 다녔던 추억, 다리 아프다 징징대면 할머니께서 그윽한 손길로 주물러 주시던 그 따스한 시간들.

동치미 담그는 아내 덕분에 내 옛날 김장하던 때를 웃으며 떠올리게 됐다.

그렇게 담근 동치미는 추운 겨울, 눈 덮인 땅에서 덮개를 헤치고 살짝 언 상태로 나와 식탁에 오른다. 동치미 항아리에서 우선 팔뚝만한 무를 몇 개 꺼내고 그 옆의 배추 한포기를 꺼낸 다음 김치 국물로 채워지면 완성이다.

그 때 할머니는 무를 세로로 4등분해 손으로 건네주시면서 베어 먹으라하셨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무 몇 개면 아침 식사를 다 할 수도 있었다. 그건 식탁의 완성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그 동치미 맛이 입력된 내게 오늘 담근 아내의 동치미는 어떤 맛일까. 그 옛날 동치미 맛에 입맛이 절로 다셔진다.

강신표 월남전 참전유공자, 젊은 시절 맹호부대 수색중대 소속으로 참전했고, 지금은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며 작은 글들을 쓰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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