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에서 태어났다. 1902년 결혼 직후 미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언론활동과 교육진흥, 실업진흥 등 여러 가지 구국사업을 전개했고, 조국 독립을 추구한 국내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13년 5월 선생은 흥사단 출범을 주도했으며, 흥사단은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재정후원과 일꾼양성을 통한 민족독립의 사명 완수에 매진했다.

1919년 3·1운동 소식이 미국에 전달되자 선생은 ‘3·1운동을 계승하자’라는 연설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민족자결주의의 공포, 파리평화회의 개최와 같은 외부적 요인보다 민족의 실력을 보여준 3·1운동이 훨씬 중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선포했다.

3·1운동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라는 결실을 맺자 선생은 그 해 5월 25일에 중국 상하이에 도착해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 취임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중국 홍궈공원에 폭탄을 투척한 날, 선생은 선생을 민단장으로 오인한 일본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이후 국내로 압송된 선생은 2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일제가 국내의 민족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1937년 6월 ‘동우회사건’을 일으키면서 선생을 비롯한 180여명의 동우회 회원들을 체포했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선생은 지병 악화로 1938년 3월 10일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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