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대위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7사단 제8연대 소속으로 평양 탈환작전에 참여해 풍부한 전투경험과 지휘 능력을 인정받아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했다.

6·25전쟁의 전 기간을 전장에서 보낸 김한준 대위는 “전투는 상하 간의 신뢰로 이뤄진다. 지휘관이 부하를 믿고 신뢰해야 자신을 사지로 몰아가는 명령이라 해도 부하는 따르게 된다”는 전투철학을 신조로 삼았다.

그는 지휘관으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휴전협상이 막바지에 달했던 1953년 7월 13일, 중공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강원도 금성천 부근을 장악하기 위해 5개 군, 15개 사단을 투입해 이른바 ‘7·13공세’로 불리는 최후공세를 하고 있던 상황. 당시 중대장이었던 김한준 대위는 425고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에 따라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해 마침내 중공군의 거센 공격을 물리치고 470명을 사살하고, 21명을 생포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425고지 전투의 승리는 사단의 주보급로를 확보하고, 전력공급원인 화천댐 사수함으로써 연대 주저항선의 한 축을 지키고 금성천 방어선의 안정적 유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은 공적으로 김한준 대위는 1953년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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