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피스병동 의료진과 환자상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권인자 자원봉사자.

 단풍이 한창 곱게 물들었다. 보도블록 위엔 낙엽이 수도 없이 뒹굴고 있다. 11월의 중앙보훈병원 모습이다. 호스피스병동.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정리하며 가족과 이웃과 작별하는 의식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국가유공자들의 인생의 마무리를 돕는 권인자 자원봉사자(64)를 만났다. 환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많은 이들이 그에게서 따뜻한 미소만을 기억하리시라는 듯.

“여기 오시는 분들은 어쩌면 모든 ‘마지막’을 경험하시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각종 단체에서 나와 이발 봉사, 목욕 봉사, 종교행사 등을 갖습니다. 이분들에게는 모두 마지막 이발, 마지막 목욕, 마지막 찬양이 되기도 하기에 참으로 엄숙하기도 하고 가슴 저리기도 하지요.”

자원봉사자 대기실에서 만난 그가 내놓는 한 장짜리 입원 환자 명단. 30여 명의 이름과 병명, 종교 등이 적힌 명단 맨 윗줄에는 지난주에 돌아가신 환자 명단이 적혀 있다. 10여 명 정도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오시는 환자는 2개월 이상 연명하시기 어려운 분들이 그 기준이다. 간혹 2개월을 넘기면서 병세가 호전돼 타 병동으로 전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극소수다. 결국 한 달이면 절반 이상의 환자들이 가족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는 셈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꽃입니다. 힘든 과정을 걷고 계신 분들을 돕는 의사 간호사들이 물론 중요하지요. 의학적으로 사실상 더 이상의 도움을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 이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권인자 봉사자의 역할 역시 그저 이분들을 따뜻하게 안아드리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손발을 주무르며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눈을 맞추고,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의 얘기는 조용히 경청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다. 여기서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앞둔 국가유공자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우리 남편도 월남전 참전유공자예요. 결혼 초기 젊은 시절의 충격적 전투가 남긴 후유증으로 무척 힘들어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간은 약물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죠. 그래서 가지게 된 국가유공자와의 인연이 저의 발길을 이쪽으로 인도했나 봐요. 한 분 한 분 가족처럼 생각이 들어 더욱 깊은 마음으로 만나 뵙고 있죠.”

그의 집은 경기도 구리시. 봉사가 있는 날이면 7시 이전에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의 새벽부터 준비를 해서 움직여야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환자들, 그리고 이미 그를 만날 수 없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지체할 수 없어, 일찌감치 서둘 수밖에 없다.

그는 이곳으로 오기 전 노인요양시설에서 1년여 봉사활동을 했다. 요양시설도 마찬가지로, 거의 일상생활이 어려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분들이 거주하는 곳.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밤이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입주자들과의 생활에서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 얼마나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칠 수 있는 일인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이 그곳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 생각하면 건강하게 이들을 찾아온 자신의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오레곤주 이민 생활 10여 년을 정리하고 돌아온 2013년부터는 그의 모든 일정이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한 봉사로 채우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의 생활도 종교단체와의 연계를 갖고 각종 시설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이 중심이었다.

그는 지금도 올해 초 대장암으로 통증이 심해 힘들어 하던 환자가 통증이 조금 나아지면서 삶에 대한 의욕을 보이며 너무 쉽게 살아온 삶을 반성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나도 봉사활동 하고 싶다”던 환자는 기어코 그곳을 걸어 나오지 못했다. 그가 천국으로 간 후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를 향한 편지를 쓰며 명복을 빌었다. 그 봉사활동의 꿈은 내게 맡기고 이젠 편안히 쉬시라고.

그는 지금도 쉬지 않고 공부한다. 요양보호사 교육에 이어 장애인, 치매 환자를 돕기 위한 상담 교육, 안전관리 코디네이터 교육 등, 필요한 공부는 모두 거쳤다. 지금은 사회복지 공부를 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이들의 더 나은 삶을 지원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단다.

그는 이제 지난해부터 조금씩 봉사활동에 시동을 걸고 있는 남편과 함께 손잡고 봉사활동 다니는 꿈을 꾸고 있다. 내년으로 약속한 그이가 전장에서 보였던 나라사랑정신이 다시 세상으로 빛을 실어 나를 것 같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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