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1일 방한한 미국·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들이 한국문화체험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가 가스텔럼 씨.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가을은 여름을 밀어내기 마련이다. 파란 하늘과 오색 노을이 빛나는 가을, 67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노병의 눈길이 상전벽해 서울을 바라본다.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행사에 맞춰 가을이라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방문한 미국 참전용사 랄프 가스텔럼(87) 씨다. “아주 아름답게 재건된 이곳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메이징(놀라워요)!”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다시 방문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후덕한 인상에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진 그는 미 해병 1사단 소속 병장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장진호전투, 흥남철수작전 등 6·25전쟁 주요 전투에 참전했다. 이제는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증언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참전용사다.

그는 미 해병대 병장으로 캘리포니아 캠프에서 훈련을 받다가 1950년 6월 긴장된 분위기 속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함선에 올랐다. 배가 출항하고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에 도착한 그의 중대는 잠시 적응 훈련을 마치고 9월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시커먼 밤에 바다를 통해 인천으로 들어가 밤새 격전을 치렀죠. 다음날 해가 떴을 때 제 눈앞의 광경을 잊지 못해요. 너무나 참혹한 광경이었죠. 우리는 그대로 서울까지 전진해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폐허가 된 서울에서 민간인들이 고통 받고 있는 모습에서 전쟁의 참혹함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에서 참전한 그는 사단과 함께 북진을 거듭해 장진호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한 진격이었다. 고토리로 가는 길에 중공군이 참전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믿지 않았다. 고토리에 진지를 마련하고 모든 것이 얼어붙는 추위와 싸우며 전투를 위한 재정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중공군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았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참호 안에서 방어태세를 갖추던 그의 앞으로 중공군 한 명이 총을 겨누고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를 살린 건 ‘맹추위’였다. 중공군이 가진 기관총이 얼어서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그의 뒤에서 수류탄 하나가 날아왔고, 그 덕에 그는 목숨을 건져 다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전투를 치르고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중공군 시체가 너무 많았어요. 우리는 그 자리에 그들을 묻어주고 흥남까지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그런 추위는 평생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흥남부두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해병대가 우리에게 캔에 든 음식과 주스를 줬는데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그는 인천상륙작전부터 서울수복, 장진호전투를 거쳐 흥남철수작전까지 한국전쟁사에 길이 남을 전투에 참전했다. 그 역시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참전을 위해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해외로 나가본 적도 없었다는 그는 ‘미지의 나라’ 한국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위험한 전투에서 고군분투했다.

그에게 한국의 기억이란 ‘황폐한 도시’ ‘슬픈 나라’였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만은 달랐다. 그는 행군길에 만나거나 주둔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안아주고 악수했다. 전쟁통에서도 친절하고 마음씨 고왔던 ‘코리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초청을 통해 한국이 저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전쟁 때에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은 한국인들을 존경하고 저 또한 한국인의 일원이라고 느낍니다. 한국전쟁은 문신처럼 제 인생에 새겨졌어요. 젊은 세대는 이해 못 하겠지만, 저는 그때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없어요. 다시 전쟁이 난다고 해도 한국을 위해 다시 이곳으로 올 겁니다.”

또한 그는 좋은 소식도 전해줬다. 장진호전투에서 수류탄을 던져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전우를 찾은 것. 지난 2001년 애리조나의 ‘장진호전투 전우 모임’에서 서로 아픔을 위로하며 대화를 나누다 만났다. ‘한국전쟁이 내게 형제를 줬다’며 웃었다.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에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이 타고 계셨다는 걸 이번 방한에서 처음 알았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며 그때 알았더라면 한국 대통령의 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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