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하면 내 젊은 시절 군 야전병원에서 본 상황이 머리에 떠오른다.

월남전에 파병되어 맹호부대 복무 중 야전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틀 후면 퇴원을 해 소속 부대에 복귀를 앞두고 있을 때다. 잠이 막 들려고 하는 야밤중에 요란한 총소리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조명탄이 하늘에서 터지면서 순간 대낮처럼 밝아지고 비상이 걸렸다. 헬리콥터 한 대가 병원 승강장에 내려앉았다. 두 명의 사상자가 헬리콥터에서 실려 나온다. 부상자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사망자는 영현소대로 옮겨졌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 의무병인 신병장과 함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해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진정하고 영현소대를 찾아가 보았다. 영현소대에서는 영현병들이 알코올에 솜을 적셔 피투성이 시신을 목욕시키는 것이었다. 시신목욕은 저승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고인을 보내기 위한 엄숙한 정화의례라고 하는데, 영현병들이 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해 시신 처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날 밤 나는 ‘살아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가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로 밤을 지새웠었다.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거의 매일 샤워를 하는데도 때가 많이 밀린다. 주말에는 동네 목욕탕을 찾아가 목욕을 한다. 따끈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으면 세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다 풀어지고 치유되는 포근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목욕을 할까?’ 뜬금없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 신생아 목욕을 시작으로, 생을 마치고 죽으면 마지막 염습하기 전 시신목욕까지 평생을 목욕과 인연을 맺고 사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인생은 목욕에서 시작해 목욕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몸을 깨끗이 씻고 목욕탕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늘을 날 듯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건 잠시일 뿐 하루해가 지기 전에 먼지와 땀으로 인해 우리 몸은 다시 때가 끼고 더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또 다시 씻어야한다. 자주 목욕을 할 수 밖에 없다.

몸에 생기는 때는 목욕을 함으로 깨끗이 씻어낼 수 있지만 우리 마음에 쌓이는 미움, 질투, 원망, 분노 등 정신을 병들게 하는 마음의 때는 어떻게 씻어낼 수 있을까. 종교를 가진 사람은 명상이나 묵상 또는 기도를 하며 자신의 평소 행위를 돌아보며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독서, 글쓰기, 음악, 등산, 여행 등으로 마음의 때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독서와 글쓰기는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폭넓은 지식과 올바른 인생관 확립에 크게 도움을 준다. 좋은 글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정화되고, 수필을 쓰다보면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게 되면서 반성과 참회의 심정으로 심성이 착해지는 것을 체험하곤 한다.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데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몸과 마음의 목욕, 우리가 평생 수행해야할 과제인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마음에 쌓이는 때를 벗겨내고 언제나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 싶다.

 

김정복 국가유공자로 교직을 명예퇴직하고 해외에서 15년 간 우리글과 우리문화를 전파하는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현재 청주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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