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해병대 4기들이 진해에서 훈련을 마치고 기념 촬영한 모습.

6·25전쟁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총력전이었다. 온 국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섰다. 평소 연약하다고 여겼던 대한민국 여성들도 나라의 위기를 보고 총궐기했다.

여성들은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때로는 군복을 입고, 때로는 군번도 없는 학생이나 민간인의 신분으로 오로지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육군여자의용군, 해군여자해병, 공군여자항공병, 육·해군 간호장교, 공군 간호군무원, 여자학도의용군, 민간간호사, 여성유격대원, 철도군속요원, 군예대(軍藝隊) 대원, 대한애국부인회원이 그들이다. 그렇게 해서 전쟁에 직접 참전한 것으로 확인된 여성들만 해도 2,400여 명에 이른다.

육군여자의용군 창설에는 6·25전쟁 이전 배속장교 교육대장을 역임했던 김현숙 소령이 앞장섰다. 김현숙은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여자의용군’ 창설을 결심하고, 신성모 국방부장관에게 건의해 남학생들의 학도의용군과 성격이 같은 ‘여자의용군 창설’을 주도했다.

김현숙은 1950년 8월 23일 “궐기한 여자의용군, 비겁한 사나이는 자성하라!”는 여자의용군 모집 담화문을 부산일보를 통해 발표했다. 여자의용군은 18-25세까지의 미혼여성으로,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자를 대상으로 했는데, 500명 모집에 2,000여 명이 몰렸다. 그렇게 해서 1950년 9월 1일 여자의용군이 출범했다.

여자의용군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남자용 전투복과 전투모를 착용하고, 머리는 단발머리로 짧게 잘랐다. 훈련은 제식훈련, 독도법, 각개전투, 분대전투, 총검술, 소총분해결합, 구급법, 군법, 정신교육을 받았다. 1기생은 부산에서, 2기생은 서울에서 교육받았다.

교육수료 후 여자의용군들은 전후방 각급부대. 심지어 정보 및 첩보부대에까지 배치돼 활동했다. 일선부대에 배치된 여자의용군들은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전사자도 다수 발생했다.

여성들은 해병대에도 자원입대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한국 해병대는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할 부대로 한국 해병대가 뽑혔다. 이에 해병대사령부는 상륙작전에 필요한 해병대를 추가로 모집했다. 제주도의 젊은 학도들과 애국청년들이 앞다퉈 자원했다. 2차례의 모집에서 3,000명을 선발했다. 이른바 해병3기와 4기, 각각 1,500명 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해병4기 모집이 끝날 무렵 제주도의 여학생과 미혼교사 및 육지에서 제주도로 피난 온 젊은 여성 126명이 해병대에 입대하겠다며 나섰다. 그들은 “우리 국토 중에서 경상도 일부와 제주도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북한군이 제주도에 쳐들어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해병대에 입대해 북한군을 죽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때 신현준 해병대사령관은 “그 뜻은 갸륵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막무가내였다. 기어이 입대하겠다며 돌아가지 않았다. 신현준 사령관도 결국 해병대에 입대하려는 제주 여성들의 애국심에 못 이겨 입대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귀신 잡는 해병대에 ‘여자해병’들이 들어가게 됐다.

여자해병들은 1950년 9월 1일 해군수송선을 타고 경남 진해로 이동해 훈련소에 입소했다. 6주간의 훈련을 마친 126명의 여자해병들은 1950년 10월 10일 수료했다. 그러나 그때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며 북진하게 되면서 전세가 역전되자 개인 희망에 따라 여자해병 51명이 귀가 조치되고, 나머지 75명은 각자의 경력과 특기, 나이 개인희망에 따라 해군통제부 참모부와 직할대, 진해해군병원에 배치됐다.

이들은 주로 선무공작, 정훈활동, 통신·보급 및 정비, 헌병, 행정 등의 업무를 처리했다. 6·25전쟁 당시 여성들은 유격대에서도 활동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구월산 여장군으로 이름난 이정희다. 이정희는 일제 강점시대 함흥 부잣집 무남독녀로 태어나 일본유학을 다녀온 신여성이었다. 광복 후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그녀의 집안은 반동분자로 낙인찍히며 부모와 남편을 잃었다. 이정희도 공산치하에서 3년간 감옥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황해도 은율에 은신해 있던 중 전쟁이 일어나자 황해도 안악에서 무장대원 70명을 규합해 ‘서하무장대’를 조직한 후 북한군에 맞서 싸웠다.

이외에도 여성들은 군이나 병과를 가리지 않고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간호장교, 간호근무원, 여성항공병, 여성철도원, 여자학도의용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국을 위해 싸웠다.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군번도 계급장도 없었다. 이들 여성들은 오로지 구국의 일념에서 나온 애국심과 충성심만으로 싸웠다. 참으로 고귀한 희생과 조국애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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