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미이 보훈섬김이가 전남 장성 백형근 어르신 댁을 찾아 메주 쑤는 일손을 도우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오늘은 볕이 좋아 메주를 쑤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국가유공자 백형근(89) 어르신 부부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덩달아 오늘 찾아온 전미이(50) 보훈섬김이도 메주 쑤는 일손을 도우랴 집안 청소와 반찬 장만하랴 마음이 분주하다. 전남 장성군 남면, 평온한 시골마을에도 메주콩을 삶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겨울이 지나면 곧 찾아올 새봄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마을 고향집의 앞마당이지만 어르신 부부의 성격만큼 그리고 전미이 섬김이의 섬세한 손길만큼 단정한 집안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월요일 오전이면 이뤄지는 이들의 만남은 이 푸근한 시골집의 활력이다.

 

성격까지 잘 맞아 ‘완벽 조화’

“막내딸처럼 일을 해 주는데 너무 고맙지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월요일 오전을 손꼽아 기다린답니다. 함께 한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젠 서로의 마음도 읽을 정도인 것 같아요.”

백형근 어르신은 전미이 섬김이 자랑에 여념이 없다. 깔끔한 성격이 부부와도 잘 맞아 이젠 월요일 오전 집안일은 물론, 소소한 일처리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조화’라고 전한다.

오늘도 집안일을 끝낸 그가 메주콩을 삶는 불 가로 다가와 남은 콩가지를 정리하고 묶어 한자리로 치워낸다. 힘든데 그만 두라는 부부의 잔소리와 그 소리를 뒤로하고 바삐 움직이는 전미이 섬김이의 작은 실랑이가 정겹다.

“올해로 10년 차를 맞는데, 일에 대한 사명감과 함께 유공자 어르신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보훈청의 지원과 제도 안에서만 움직이면 사실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너무 명백하거든요. 힘도 들구요.”

시골지역이기에 동선이 너무 멀어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장시간 자동차 운전에 따른 부담, 어르신들의 쏟아지는 요구. 그러나 그는 흔쾌히 즐겁게 일을 한다. 그건 노동이라기보다 봉사라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어르신 돌아가실 땐 큰 ‘상심’

“지난해 정말로 성심껏 도와드렸던 한 어르신께서 돌아가셨어요. 작은 낙상사고가 나면서 몸이 편찮아 지난해 10월 경기도의 딸집으로 거쳐를 옮기셨죠. 그 후 몇 차례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되셨는지 통화를 피하시더라구요. 올해 초 전화 다시 드렸더니, 돌아가셨다고.”

그간 함께 나눴던 얘기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모습, 무엇이든 챙겨주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떠올랐단다. 순간 그의 눈가에 물빛이 비쳤다.

그는 아직 보훈섬김이의 서비스를 몰라서 홀로 외롭게 사시는 분들도 많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예가 많다며, 이 좋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이 안타깝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장성군 관내 섬김이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비스가 필요한 유공자 찾기에도 열심이다.

지난해에는 장애인 부부 가정을 3개월간 돌보아 드린 적이 있었다. 너무나 밝은 부부와 행복한 삶, 그분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오히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기한은 끝났지만, 가끔씩 들러 얘기 나누고 작은 도움을 드리는 그는 이미 국가유공자들의 삶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채소가 한창 나는 시기에는 오이며 상추 등을 싸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는 거절하지 않고 받아온다. 그리곤 이걸 필요로 한 국가유공자들께 전달해 1석2조 이득을 얻는다. 그렇게 그는 지역 유공자 공동체를 묶는 명실상부한 섬김이가 됐다.

전미이 섬김이는 인터뷰 중에도 어르신들의 민원성(?) 전화를 받으며 오후에 시장을 들러 사다달라는 주문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하곤 했다. 그렇게 그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진 ‘국가유공자의 복덩이 같은 딸이 되자’는 소망을 매일 이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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