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고아들을 실은 C-54 수송기가 제주기지에 도작하자 블레이즈델(왼쪽) 중령과 딘 헤스(오른쪽) 대령이 나와 무사히 도착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전쟁고아다. 고아들은 대부분 스스로의 생존능력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대부분이 배고픔이나 질병으로 죽었다.

6·25전쟁 때도 수없이 많은 전쟁고아가 발생했다. 고아들은 서울이 함락된 후 피란길에서, 낙동강전선의 이곳저곳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빚어진 1·4후퇴 길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났다. 고아들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속출했다. 그 숫자가 공식 통계로 잡힌 것만 해도 무려 10만 명에 달했다.

고아들의 참상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했다. 고아들은 굶주림, 영양실조, 질병으로 괴로워했다. 돌봐 줄 사람 없고, 갈데없는 고아들은 도랑이나 빙판에 쓰러져 자다가 얼어 죽었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종교 및 사회단체 그리고 미군들이 제한적이나마 고아원을 설립해 보살피고 있었다. 특히 미 공군부대는 도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몰려드는 전쟁고아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줬다. 하지만 그런 도움과 선행으로 넘쳐나는 고아들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이에 대한 별도 예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고아원들은 뜻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거나,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시설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모두 열악했다. 하지만 전시에 고아들에게 있어 이것은 그나마 ‘천국’이었다.

그런 고아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것도 추운 겨울이었다. 중공군의 개입과 공세로 인해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내주고 38선으로 물러나면서 수도 서울까지 위험에 처하게 됐다. 그때가 1950년 12월이었다. 그 과정에서 평양과 서울에 있던 고아들에 대한 처리가 수립되지 않았다. 고아들은 그대로 방치되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위기는 평양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평양에는 우리 공군과 미군 공군이 보호하고 있는 전쟁고아들이 100여 명 있었다. 그런데 평양을 철수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고아들의 처리가 대두됐다.

다행히 평양의 전쟁고아들은 우리 공군의 주도와 미 공군 부대장 딘 헤스(Dean Hess) 중령의 도움으로 C-47 수송기를 통해 제주도로 안전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상황을 보고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수송기를 고아들을 후송하는데 사용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평양의 전쟁고아들을 공중수송을 하게 됐다.

전쟁고아들에 대한 후방지역으로의 수송문제는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중공군의 집요한 공세로 서울이 위험에 빠지게 되자, 미8군과 우리 정부에서는 서울 천도를 결정하게 됐다. 이른바 1·4후퇴이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피난을 가게 됐다. 그때 서울 주둔지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봐오던 미 공군 헤스 중령과 미 공군 군목(軍牧)이던 러셀 블레이스델(Rusell Blaisdell) 중령은 1,000여 명에 달하는 전쟁고아들의 후송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는 대통령 전용기인 C-47 수송기 1대로는 그 많은 고아들을 실어 나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촉박했다. 1,000여 명의 고아들을 50명 수용인원인 C-47수송기에 실어 나르려면 적어도 20번 이상 왕복해야 했다. 한 겨울에 수송기 1대로 서울에서 제주까지 20번이나 왕복 운행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 서울이 함락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딘 헤스 중령과 블레이스델 중령은 미5공군 종군목사인 월버튼 대령을 통해 미5공군사령관에 건의하여 C-54수송기 15대를 전쟁고아 수송용으로 승인받게 됐다. 이에 따라 인천에 있던 전쟁고아들은 다시 김포공항으로 와서 제주도로 가는 미 C-54수송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게 됐다. 이때 미5공군에서는 전쟁고아들을 제주도로 공중수송하는 작전명칭을 ‘장난감 자동차작전(Operation Kiddy Car Airlift)’으로 이름 붙였다.

제주도로 간 1,000여 명의 전쟁고아들은 우리공군과 미 공군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제주도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됐다. 제주도에서는 ‘전쟁고아의 어머니’로 불리는 황온순 여사가 전쟁고아들을 돌봤고, 공군 군의관 계원철 소령이 고아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온정을 베풀었다. 참혹하면서도 냉혹한 전쟁 속에서 핀 한 편의 훈훈한 드라마 같은 아름다운 정경이 우리 공군과 유엔공군에 의해 빛나게 됐다. 이 공로로 전쟁고아 수송에 가장 공이 많은 헤스 중령은 훈장을 받았고, ‘전쟁고아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남정옥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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